성진선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후기에, 대사간, 홍문관부제학, 승정원우승지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즉행(則行)
연강(烟江)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557년(명종 12)
사망 연도
미상
본관
창녕(昌寧)
주요 관직
대사간|홍문관부제학|승정원우승지
정의
조선 후기에, 대사간, 홍문관부제학, 승정원우승지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즉행(則行), 호는 연강(烟江). 참판 성몽정(成夢井)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성예원(成禮元)이고, 아버지는 참의 성수익(成壽益)이며, 어머니는 최세신(崔世臣)의 딸이다. 목사 성호선(成好善)의 동생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일찍이 천거에 의하여 관직에 나아가 도사(都事)로 재직하던 중 1594년(선조 27) 정시 문과에 응시, 동생 성계선(成啓善)과 함께 나란히 병과로 급제하였다. 1597년 전라도도사로 있을 때, 형장(刑杖)을 남용하며 이서(吏胥)들을 지나치게 엄히 다룸으로써 소요를 일으켰다.

이로 인해 폐단이 잦다 하여 파직된 일이 있었으나 곧 재기용되어 홍문관수찬(弘文館修撰)·사간원정언(司諫院正言)·경연시독관(經筵侍讀官) 등을 지냈다. 1613년(광해군 5) 인목대비(仁穆大妃) 폐모론이 일었다.

이 때 아들 성하연(成夏衍)과 조카 이생인(李生寅)이 이이첨(李爾瞻)의 사위 이상항(李尙恒) 등과 함께 대비를 모해하는 소를 올려 성진선의 처지를 난처하게 하였다. 그러나 자신은 절의를 지켜 끝까지 정청(庭請: 백관이 국정논의에 참여함)에 참여하지 않았다.

1615년 경상도관찰사를 지낸 뒤 대사간·홍문관부제학·승정원우승지 등을 역임하였다.

참고문헌

『선조실록(宣祖實錄)』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국조방목(國朝榜目)』
『대동야승(大東野乘)』
집필자
조원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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