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5년 경상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이 태실은 조선 성종 왕녀의 태를 봉안한 것으로 화봉리 태봉산 정상부에 위치하며 현재 이곳에는 원형의 석물과 태실 앞에 세운 조그만 표석이 남아 있다.
왕녀태실은 이미 오래 전에 도굴되어 태항(胎缸)은 없어지고 태항 위에 덮어 두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개석(蓋石)은 마을 주민들에 의하여 옮겨져 화봉마을의 민가 담장 속 석재로 이용되고 있다.
그리고 두 개의 표석에는 전면에 ‘왕녀태실(王女胎室)’ ‘성화 17년 10월 10일(成化十七年十月十日)’이라고 각자(刻字)되어 있어 성종 12년(1481)에 당시 임금인 성종 왕녀의 태를 이곳에 봉안하였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밀주구지(密州舊誌)』에는 조상야리(助山也里) 재부서이십리(在府西二十里) 당성공주태(唐成公主胎) 출김선생필재집(出金先生畢齊集)이라 기록되어 있다. 여기의 조산야리는 지금의 화봉(華封)이고, 조선 성종에게는 공주가 신숙공주(愼淑公主)밖에 없기 때문에 밀주구지의 당성공주는 신숙공주와 동일인물일 가능성이 많다.
표석의 크기는 오른 쪽의 것은 높이 115㎝, 폭 36㎝, 두께 20㎝이고 왼쪽은 높이 115㎝, 폭 38㎝, 두께 23㎝ 정도이다. 또한 마을에 있는 개석의 크기는 높이 120㎝ 정도이고 내부 크기는 50㎝ 정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