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농민군의 2차봉기에 직면한 조정에서는 각 지방에서 농민군을 토벌하기 위한 민보군(民堡軍)을 결성하여 활동하고 있던 만보군 지휘자에게 소모관이라는 직함을 부여해서 그들의 활동을 뒷받침하였다.
이에 따라 1894년 9월 29일 삼남(三南)의 남북 요지에 각각 2인씩 소모사를 다시 임명하였다. 삼남 요지에 임명된 소모사는 모두 현직 지방관이었으나 상주 소모사인 정의묵만 유일하게 읍성을 빼앗겼던 상주의 실정을 반영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즉 상주 지역의 명문대가에서 소모사를 선임해야만 보수세력의 결속이 용이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소모사에 임명된 정의묵은 소모일기를 통해 상주 소모영의 설치과정, 상주 면리(面里) 지역의 민보군 조직, 낙동(洛東) 일본군 병참부와의 관계, 호남과 호서 농민군의 동정, 상주 지방 방위방의 구축 등에 관하여 기록하고 있다. 이 자료는 동학농민전쟁기 상주 소모영 중심의 민보군 활동상을 생생히 보여 주는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