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반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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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반장 / 이인세
소반장 / 이인세
공예
개념
음식을 운반하는 작은 규모의 상들을 만드는 일 및 그 일을 하는 장인. 나주반장.
이칭
이칭
나주반장
목차
정의
음식을 운반하는 작은 규모의 상들을 만드는 일 및 그 일을 하는 장인. 나주반장.
내용

1992년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우리 나라 주거방식은 일찍부터 온돌방을 위주로 하는 좌식생활(坐式生活)이기 때문에 그에 적합한 가재기물들이 발달하였다. 음식을 운반하기에 편리하도록 고안된 소반이 발달하게 된 요인도 우리 주택의 공간구조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즉, 음식을 조리하는 부엌과 방이 멀기 때문에 자연히 음식을 나르는 작은 규모의 상이 필요하였던 것이다. 또한, 조선왕조가 이념으로 삼았던 유교의 가르침에 따라 엄격한 남녀유별·장유유서(長幼有序)의 사상이 생활 깊숙이 자리잡아 겸상보다는 독상이 통례로 되어 왔기 때문이다.

소반이 원래 음식상이라기보다는 음식을 나르는 용도로 시작되었으리라는 것은 고구려 고분벽화 각저총(角抵塚) 현실 북벽 인물도와 무용총(舞踊塚) 주실 오른쪽 벽에 그려진 묘주의 생활장면을 통하여 추측할 수 있는데, 음식이 담긴 식기를 받친 사각수족반(四角獸足盤)의 형태는 조선시대 소반의 선형(先形)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조선 중엽까지만 해도 왕가와 귀족, 또는 관아에서만 소반을 사용하였을 것으로 추측되는데, 소반의 명칭이 말해 주는 바와 같이 이른바 통영반·나주반·해주반·안주반 등 특정 지역에 따라 그 조형이 특성을 보여 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목기류의 제작은 관부(官府) 직영의 각 관서에서 거기에 전속된 공장(工匠)에 의하여 이루어졌으며, 또한 민간에서는 그들 나름대로의 민간공장들이 있어 생활에 필요한 목물을 제작 공급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목기를 제작하는 장인을 소목장(小木匠)이라 하였다.

고려시대에는 관부의 중상서(中尙署)에 소목장을 두었으며, 조선시대에도 서울의 제궁(諸宮)·각사(各司)에 예속된 장인을 경공장(京工匠)이라 하였다. 이들은 주로 병기 제작과 왕족^귀족의 생활품 등의 제조에 종사하였으며, 또 지방관청에 소속되었던 외공장(外工匠)은 각 관청에 등록되어 있으면서 공역(公役)에 종사하였다.

그러나 소반만을 제조하는 이른바 ‘소반장’은 별도로 두지 않고 대개 소목장이 이러한 목물을 곁들여 제조하였다.

소반의 종류는 생산지·형태·용도 등에 따라 60여 종으로 분류되며, 각기 그 구조에 따라 명칭이 다르다. 즉 그 산지 특유의 재목을 쓰고 형태 또한 달라 지방색이 두드러지니, 통영반·해주반·나주반은 그중 특색이 뚜렷한 것이다.

소반의 목재는 은행나무·느티나무·피나무·소나무·버드나무 등 다양하지만 요즘에 주로 쓰이는 나무는 괴목(槐木 : 회화나무)·용목(龍木 : 뿌리부분을 자른 목재는 마치 용이 서려 있는 듯 한 나뭇결을 나타내므로 붙여진 이름.)과 은행나무[杏子木]이다.

은행나무를 목재로 만든 품이 매우 좋아 가벼운 소반을 행자반(杏子盤)이라 하는데, 행자목은 칠테가 좋고 칠을 잘 받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전부터 소반의 제목은 은행나무와 피나무를 가장 많이 사용하였다.

현재 소반장으로 전통의 맥을 잇고 있는 사람으로는, 1986년 전라남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나주반의 김춘식(金春植)과 소반장의 기능보유자로 지정된 이인세(李仁世) 등이 있다.

참고문헌

『이화여자대학교박물관특별전도록 11-소반-』(이화여자대학교박물관, 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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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임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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