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남도 논산 출신. 1919년 대한광복회(大韓光復會) 간부인 우이견(禹利見)·권영만(權寧萬)·이재환(李載煥) 등과 협의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군자금을 모금하여 임시정부에 송금하기로 하였다.
그리하여 충청남도 지역의 부호를 조사한 뒤 군자금납부요구서와 이에 불응할 때에는 사형에 처한다는 내용의 문서 19통을 작성하여 발송하였다.
그 뒤 수금된 자금 2,000원을 임시정부 특파원 김규일(金圭一)에게 주어 송금하도록 하였으며, 1920년 경신학교(儆新學校)에서 임시정부 후원단체인 독립주비단(獨立籌備團)을 조직하고 그 해 음력 9월에 이 단의 단장으로 추대되었다.
그 뒤 임시정부로부터 독립공채를 받아 이를 각지의 부호들에게 배부하여 군자금을 모금하였으며, 임시정부가 발행하는 각종의 독립운동 관계문서를 인수하여 이를 배포함으로써 독립의식을 고취하였다.
1920년 일본경찰에 잡혀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4년을 언도받았다.
1982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