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이 일어나던 해 왜군의 포로가 되어 오랫동안 일본에 억류, 돌아올 때 일본 사정을 자세히 탐지해와 당면한 군사·외교 등의 전략상에 기여하였다.
1598년(선조 31) 노량해전 당시 이순신(李舜臣) 휘하에 참전, 이순신이 전사하자 임기응변으로 그의 죽음을 비밀에 붙인 다음 자신이 직접 갑판 위에 올라가 북을 치며 평상시와 다름없이 군사들을 지휘, 독전(督戰)함으로써 마침내 승전할 수 있게 하였다.
1604년 승장(僧將) 유정(惟政)과 함께 일본에 들어가 임진왜란의 사태수습에 공을 세우고 조선인 포로 3,000여 명을 이끌고 돌아온 뒤, 2년 뒤 서장관(書狀官)으로 일본에 파견되어 전란의 뒤처리를 위하여 노력하였다. 관직은 부장(部將)·만호(萬戶)·첨지중추부사 등을 역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