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권 2책. 필사본. 서문과 발문이 없어 편자와 편년을 알 수 없다. 규장각 도서에 있다.
권1·2는 시 438수, 권3·4는 소차(疏箚) 65편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시는 여행노정의 감회나 경치를 노래한 감회·서경류가 많은 것이 특징이다. 서경시로는 특히 금강산일대의 명승을 돌아보면서 읊은 것이 많은데, 이들 시는 대개 1759년(영조 35) 그가 영돈녕부사로 있을 때 계비책립을 반대, 임천(林川)에 부처(付處)되었다가 이듬해 풀려나와 춘천에 은거하면서 지은 것이다.
「갈현점조발(葛峴店朝發)」을 비롯하여 「도금성현풍일불가류삼일시발(到金城縣風日不佳留三日始發)」·「백탑동(白塔洞)」·「자영원암도백화암잉향표훈사(自靈源庵到白華庵仍向表訓寺)」 등 여행노정에 따라 시를 수록하고 있다. 이어 「만폭동(萬瀑洞)」·「보덕굴(普德窟)」·「마하연(摩하訶衍)」·「해산정월야청고슬(海山亭月夜聽鼓瑟)」·「삼일포(三日浦)」·「해금강(海金剛)」·「양양도중(襄陽途中)」·「낙산사(洛山寺)」·「소양정(昭陽亭)」 등 관동지방에 있는 명승지를 읊은 시가 10여수 된다.
대개 경치를 묘사함에 있어 서정이 두드러질 뿐만 아니라, 신선에 대한 동경심을 발하여 도교사상에 접근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밖에 「농촌잡영(農村雜詠)」 13수와 「천안도중(天安途中)」·「차령도중(車嶺途中)」, 그리고 「백제회고(百濟懷古)」 2수와 「가림잡영(嘉林雜詠)」 44수 등도 그가 불우한 생활을 할 때 쓴 것이다.
소차는 사직소(辭職疏)가 대부분이며, 그 가운데 북도에 흉년이 들어 굶주리는 백성들을 구휼하기 위하여 조정에서 식량을 지원하도록 요청한 내용 등이 있어 우국애민의 정신을 짐작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