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토기는 1975년부터 1978년까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조사한 충청남도 부여군 초촌면 송국리주거지 유적에서 출토된 민무늬토기의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이후 발굴성과에 힘입어 금강과 영산강, 보성강유역은 물론 낙동강유역 등지에서도 발견되었다.
송국리식토기는 대체로 경미하게 외반하는 짧은 구연부와 배부른 동체부에서 축약되면서 좁은 저부를 형성하는 형태를 보여준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구연부는 크게 외반하는 경향을 보이고 높이에 비해 저부가 넓어지며 동체부의 최대경은 중앙부에서 상부로 이동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구연부의 외반 정도와 동체부의 최대경 위치는 형식 분류의 주요 속성으로 이해되고 있다. 바탕흙〔胎土〕은 굵은 석영·장석 등의 석립(石粒)이 혼입된 것과 세사립(細沙粒)이 섞인 것이 존재한다. 토기의 색조는 적갈색·황갈색·흑갈색 등 다양하게 나타나며, 토기의 내 외면에는 부분적으로 흑반(黑斑)이 발견되기도 한다. 그릇 바깥면의 정면수법(整面手法)은 대부분 물손질이 이루어지는데, 서해안지역의 일부에서는 조개껍질〔貝殼〕을 이용하며, 전남지역에서는 마연(磨硏)수법을 사용하기도 한다.
송국리식토기는 주거생활 속에서 사용된 실생활용기였으나 무덤 조성 시에도 이용되었다. 무덤으로 사용된 대표적인 예는 독널무덤〔甕棺墓〕으로 무덤구덩〔墓壙〕을 판 후에 몸통이 긴 독모양토기〔甕形土器〕를 바로 세우거나〔直置〕 기울여 세워〔斜置〕 주검〔屍身〕을 매장하였으며, 뚜껑〔蓋〕은 대부분 돌판을 이용하였다. 특히 독널로 이용된 독모양토기의 저부는 구멍이 뚫린 예가 많다. 저부에 구멍 뚫린 토기는 집자리에서도 다량 출토되며 크기는 상대적으로 작은 편이다.
송국리식토기의 편년에 대해서는 방사성탄소연대자료에 의거하여 기원전 8세기까지 상향조정되고 있는 추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