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도팔경(松都八景)’은 고려 말 이제현(李齊賢)의 『익재난고(益齋亂藁)』와 『세종실록(世宗實錄)』 지리지 등의 기록에 남아 있어서 고려 말부터 조선 초기에 걸쳐 유행한 주제였음이 확인된다.
「송도팔경도」의 여덟 장면은 ① 자동심승(紫洞尋僧), ② 청교송객(靑郊送客), ③ 북산연우(北山烟雨), ④ 서강풍설(西江風雪), ⑤ 백악청운(白嶽晴雲), ⑥ 황교만조(黃郊晩照), ⑦ 장단석벽(長湍石壁), ⑧ 박연폭포(朴淵瀑布)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① 곡령춘청(鵠嶺春晴), ② 용산추만(龍山秋晩), ③ 자동심승(紫洞尋僧), ④ 청교송객(靑郊送客), ⑤ 웅천계음(熊川禊飮), ⑥ 용야심춘(龍野尋春), ⑦ 남포연사(南浦烟莎), ⑧ 서강월정(西江月艇)으로 구성되기도 했다.
「송도팔경도」는 중국에서 유입된 「소상팔경도(瀟湘八景圖)」와 밀접한 관련을 가지며 발전하였던 것으로 믿어진다. 「송도팔경도」의 자동심승·북산연우·서강풍설·황교만조는 각각 「소상팔경도」 중 연사모종·소상야우·강천모설·어촌석조 등과 서로 상통하는 요소들을 지니고 있다. 즉 이 두 가지 팔경도에서는 승려와 사찰, 비·눈·저녁노을 등의 요소들을 공유하고 있어 상호 연관성을 엿보게 한다. 그러나 「송도팔경도」가 전해지지 않고 있어 직접적인 비교는 불가능하다.
송도팔경의 전통은 조선 초기에 「신도팔경도(新都八景圖)」를 낳게 하였다. 새로운 도읍 한양의 경관을 대상으로 하는 ‘신도팔경’은 ① 기전산하(畿甸山河), ② 도성궁원(都城宮苑), ③ 열서성공(列署星供), ④ 제방기시(諸坊碁市), ⑤ 동문교장(東門敎場), ⑥ 서강조박(西江漕泊), ⑦ 남도행인(南渡行人), ⑧ 북교목마(北郊牧馬) 등으로 이루어져 있었음이 권근(權近)의 『양촌집(陽村集)』에 의하여 확인되나 작품은 전해지지 않는다.
이 밖에 관동팔경(關東八景)으로 ① 간성의 청간정(淸澗亭), ② 강릉의 경포대(鏡浦臺), ③ 고성의 삼일포(三日浦), ④ 삼척의 죽서루(竹西樓), ⑤ 양양의 낙산사(洛山寺), ⑥ 울진의 망앙정(望洋亭), ⑦ 통천의 총석정(叢石亭), ⑧ 평해의 월송정(越松亭)이 꼽혔다. 또 관서팔경(關西八景)은 ① 강계의 인풍루(仁風樓), ② 의주의 통군정(統軍亭), ③ 선천의 동립폭포(東林瀑布), ④ 안주의 백상루(百祥樓), ⑤ 평양의 연광정(練光亭), ⑥ 성천의 강선루(降仙樓), ⑦ 만포의 세검정(洗劍亭), ⑧ 영변의 약산동대(藥山東臺) 등으로 구성되었다. 이처럼 송도팔경 이후 각지의 팔경이 문학과 회화의 제재로 선호되면서 조선 말기까지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