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 신라의 송변현이었는데, 경덕왕 때남수(南垂)로 고쳐 거제현의 영현으로 하였다. 1271년(원종 12) 왜구에게 이곳을 점령당하자 주민을 거창군 가조현(加祚縣)으로 옮겨 오랫동안 주민이 살지 않았으나, 조선 세종 때 주민의 거주를 허가하고 거제군의 직촌(直村)으로 삼았다.
『세종실록지리지』에 간전(墾田) 709결(結)이라고 기록된 점으로 보아 송변의 행정구역은 섬 남쪽의 다포리 일대까지 미쳤을 것이다. 송변은 조선시대에 군사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었으므로 지세포(知世浦) 수군만호의 지휘를 받았으며, 부근의 가라산(加羅山) 봉수는 남쪽의 남망(南望)과 북쪽의 가을곶(柯乙串) 봉수와 연결되었다.
지형상으로는 해안의 좁은 평야를 제외하면 삼면이 가파른 산지로 둘러싸여 있어, 왜적이 침입해왔을 때 방어하거나 대피하기 어려워 오랫동안 주민이 거주하지 않았던 것으로 본다. 교통로도 육상도로가 없어 외부와의 연락은 해로에만 의존하였다. 지금의 동부면 지역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