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송악)을 만월형의 길지(吉地)로 풀이하고 있다. 즉, 개성은 북으로 송악·천마(天摩)·성거(聖居) 등 산악의 천험이 있고, 좌우로 임진(臨津)·예성(禮成)의 두 강이 흐르며, 강화·교동의 섬들이 앞바다에 방파제처럼 널려 있어 웅위한 육해의 형승이 국도(國都)로서의 명당이라 하였다.
그리고 송악명당은 마두명당(馬頭明堂)·부소명당(扶蘇明堂)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한편 『송악명당기』는 전체적인 내용은 전하는 바가 없고 그 일부만이 알려져 있으며, 고려시대 지리도참사상을 엿볼 수 있는 대표적인 기록의 하나로 이궁설치나 천도설이 제기될 때마다 주목되기도 하였다.
그 내용에 “서강(西江 : 예성강)가에 군자어마형(君子御馬形)의 명당터가 있는바, 태조가 통일하던 병신년(936)으로부터 2회갑, 즉 120년 뒤(1056)에 이 자리에 궁궐을 지으면 국업(國業)이 연장되리라.”라는 기록이 있어, 1056년(문종 10)에 태사령(太史令) 김종윤(金宗允) 등에게 명하여 정주(貞州) 예성강변 병악(騈岳) 남쪽에 장원정(長源亭)이라는 이궁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