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여산(礪山). 자는 원경(元卿), 호는 우수(迂叟). 참판 송일(宋馹)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도승지 송시길(宋時吉)이고, 아버지는 송증(宋拯)이며, 어머니는 신득홍(申得洪)의 딸이다.
1683년(숙종 9) 증광 문과에 갑과로 급제하고, 1690년 사간원정언(司諫院正言)에 올랐다. 당시 폐출된 인현왕후 민씨(仁顯王后閔氏) 처우문제에 대한 소를 올렸다. 이어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이 되고 1696년 경성판관으로 그 지역을 잘 다스려 품계가 오르고, 뒤에 승지가 되어 참찬관(參贊官)을 겸임하였다.
1701년에 인현왕후가 죽자 고부사(告訃使)로 청나라에 다녀왔으며, 1708년 강원도관찰사로 있으면서 절수(折受: 국가로부터 자신의 몫으로 땅이나 결세를 받음)의 폐를 상소하여 강릉·춘천·낭천 등 3읍의 절수를 폐지하게 하였다. 글씨에 뛰어났으며, 문묘 대성전(大成殿: 공자의 위패를 모신 전각)의 현판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