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천유집 ()

송천유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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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
문헌
조선 전기의 문신, 양응정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842년에 간행한 시문집.
정의
조선 전기의 문신, 양응정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842년에 간행한 시문집.
편찬/발간 경위

양응정의 손자 양만용(梁曼容)이 편집하였고, 1842년(현종 8)에 후손 양찬영(梁纘永)이 간행하였다. 권두에 정두경(鄭斗卿)과 신천익(愼天翊)이 쓴 2편의 서문이 있고, 권말에 홍경모(洪敬謨)의 구발과 후손 양찬영·양상해(梁相海)의 발문이 있다.

서지적 사항

7권 3책. 목활자본. 국립중앙도서관과 고려대학교 도서관·연세대학교 도서관 등에 있다.

내용

권1·2에 시 220수, 부(賦) 3편, 권3·4에 잡저 17편, 서(書) 5편과 부록의 일부가 실렸으며, 권5∼7은 부록이다.

시는 220여 수가 실려 있었으나 대부분이 임진왜란 때 없어졌다고 한다. 정경(情境)이 핍절하여 당시부터 이름을 날린 시인의 작품다움을 느낄 수 있다. 삼당시인(三唐詩人) 최경창(崔慶昌)과 백광훈(白光勳) 등이 저자의 문인이다.

권1에 승려나 불교를 시제(詩題)로 한 시가 23수나 된다. 그 가운데에는 “내 평생 불교의 뜻을 좋아하여, 노승을 초청하여 이야기하곤 하네.(平生貪佛意 招與老僧言)”라고 쓴 시가 있을 정도로 불교를 좋아한 시인이기도 하다. 여종이나 기녀에 관한 시도 8수 있다. 그 가운데 「도비소합(悼婢蘇合)」은 최경창의 사랑을 받던 가사(歌詞)의 명인 소합(蘇合)의 죽음을 애도한 시다. 또 당시의 명사 임억령(林億齡)과 서로 주고받은 시도 여러 편 실려 있다.

잡저의 「의문(疑問)」과 「의(義)」는 1540년(중종 35) 생원시 때 장원한 작품이며, 「책제(策題)」는 1564년(명종 19) 고시관(考試官)으로 있을 때의 저작이다. 서(書)는 대부분이 유희춘(柳希春)에게 보낸 편지인데, 유희춘은 사서(四書)의 소주(小註)와 구결(口訣)을 만들 적에 양응정이 만든 구결을 많이 참고하였으며, 특히 『중용』과 『대학』은 저자의 연구가 큰 힘이 되었다고 한다.

「부언행록(附言行錄)」은 백광훈의 기록이며, 「효자생원공행장(孝子生員公行狀)」은은 임진왜란 때 참전하고 뒤에 동생과 함께 어머니를 따라 바다에 투신한 맏아들 양산룡(梁山龍)의 행장이고, 「반계공행장(蟠溪公行狀)」은 임진왜란 때 전사한 둘째 아들 양산숙(梁山璹)의 행장이다. 그리고 「효자처사공행장(孝子處士公行狀)」은 정유재란 때 바다에 뛰어들어 자결하는 어머니와 큰형 양산룡과 함께 자살한 셋째 아들 양산축(梁山軸)의 행장이다.

의의와 평가

이 책은 조선 중기의 한시 연구에 빼놓을 수 없는 자료이며, 임진·정유 양란 때의 의병 활동 상황을 연구하는 데 참고 자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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