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창향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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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창향교 대성전 정면
순창향교 대성전 정면
유적
전북특별자치도 순창군 순창읍에 있는 조선전기에 창건된 향교. 교육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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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전북특별자치도 순창군 순창읍에 있는 조선전기에 창건된 향교. 교육시설.
역사적 변천

1413년(태종 13)에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창건되었다.그 뒤 군수 김수광(金秀光)이 군 북쪽의 옥천동으로 이건하였는데, 그때 몽암(夢庵) 이숙감(李淑瑊)이 비명을 썼다. 1661년(현종 2) 군수 윤종지(尹宗之)가 추산(追山) 기슭으로 이축하였다. 1694년 낙뢰로 파괴된 것을 1713년에 군수 조태기(趙泰期)가 오산 아래로 이전하여 중창하였다. 일제 강점기에는 일제에 탈취당하여 오랜 세월 관리되지 않아 훼손되었고, 1930년 봄에 권병헌(權炳憲)이 유림들에게 성금을 거두어 대성전, 명륜당, 동재와 서재를 보수하였다. 1950년에 6·25사변으로 소실되었다가 1959년 군수 김인덕(金仁德)이 중수하였으며,1965년에 문묘(文廟), 1970년에 명륜당을 중수하는 한편 창고를 신축하고 담장을 다시 쌓았고, 1974년과 1975년에 보수하고, 1981년 단목원(檀木院)이 노후화됨에 따라 단군 성조를 대성전에 9년간 봉안하기도 하였다.

특징

현존하는 건물로는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인 대성전, 정면 7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인 명륜당 · 동무(東廡) · 서무(西廡) · 동재(東齋) · 서재(西齋) · 내삼문(內三門) · 외삼문 등이 있다. 건축형태는 앞쪽은 강학 공간인 명륜당이 앞쪽에, 제사 공간인 대성진이 뒤쪽에 있는 전학후묘(前學後廟)의 배치형식이다. 대성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로, 겹처마 맞배지붕 익공계 건물이며 주춧돌은 화강암을 1단주로 처리하고 기둥은 민흘림 형식이다. 명륜당은 정면 7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이며, 1970년 보수할 때 건물 좌우 각 1칸을 방으로 만들었다. 동무(東廡)와 서무(西廡)는 정면 · 측면 각각 3칸으로 이루어져 있다. 외삼문은 솟을대문으로 중앙 칸 상부에 ‘옥천유문(玉川儒門)’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외삼문 밖 약 50m 지점에 홍살문이 있으며 외삼문을 들어서면 10여 기의 비석이 담장을 따라 나란히 세워져 있다.

이 향교의 대성전은 1975년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으며, 5성(五聖), 10철(十哲), 송조6현(宋朝六賢), 우리나라 18현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 · 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이 교생을 가르쳤다.

조선 후기 이래 향교는 교육 기능이 쇠퇴하고 대신 선현에 대한 제향을 통한 교화 기능을 주로 담당하였다. 봄 · 가을에 석전(釋奠)을 봉행(奉行)하며 초하루 · 보름에 분향을 하고 있다. 현재 전교(典校) 1명과 장의(掌議) 수명이 운영을 담당하고 있다.

참고문헌

『문화유적총람』(문화재관리국, 1977)
『문화재대관』(전북문화재과, 1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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