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 죽내리 유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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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 죽내리 유적 전경
순천 죽내리 유적 전경
선사문화 /고대사
유적
국가유산
전라남도 순천시 황전면에 있는 석기시대 이후 집터와 돌덧널무덤 · 토기 관련 복합유적.
시도자연유산
지정 명칭
순천죽내리유적(順天竹內里遺蹟)
분류
유적건조물/유물산포지유적산포지/유적분포지/유적분포지
지정기관
전라남도
종목
전라남도 시도기념물(1999년 07월 05일 지정)
소재지
전남 순천시 황전면 죽내리 산41번지 등 10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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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전라남도 순천시 황전면에 있는 석기시대 이후 집터와 돌덧널무덤 · 토기 관련 복합유적.
개설

섬진강의 한 지류에 자리하여 넓게 보면 지리산 생태계에 속하며, 좁게는 길이 18.5㎞의 황전천 유역을 둘러싼 소규모의 분지 속에 둘러싸여 있는 형국이다. 발굴지역은 황전천 쪽으로 완만하게 비탈진 산기슭에 위치하고 있다. 순천-구례간 국도 제17호선 확포장 공사구간에 대한 문화유적 지표조사에서 청동기·삼국시대의 유물이 발견되어, 1996년 2월∼1997년 4월에 걸쳐 조선대학교박물관에 의해 발굴 조사되었다. 발굴도중 구석기 문화층이 드러나게 되면서 1996년 10월∼1997년 4월에 추가발굴을 실시하였다. 1999년 7월 5일 전라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내용

죽내리 유적에서는 마지막 간빙기인 12만 5,000년 전부터 오늘날까지의 퇴적층이 잘 남아 있었다. 여기에 구석기시대, 중석기시대, 청동기시대, 삼국시대 문화층이 차례로 층위를 이루고 있었다. 유적의 층위는 맨 아래 강물 퇴적층, 위로 황갈색 찰흙층, 적갈색 찰흙층, 갈색 찰흙층, 모래·모난돌층, 옅은 갈색 찰흙층이 차례로 쌓여 있었다.

죽내리 유적은 9개의 지층이 있는데 지질학적 층위는 위에서부터 아래로, 문화층은 아래층으로부터 위로 번호를 붙였다. 1지층은 표토층으로 제자리를 잃은 유물들이 발견되었다. 2지층은 명갈색 찰흙층으로 삼국시대, 청동기시대, 구석기시대의 4문화층에서 유물들이 발견되었고 3지층은 모래모난돌층으로 비문화층이다. 4지층은 암갈색 찰흙층으로 구석기시대 2·3문화층의 유물들이 발견되었는데 이 문화층들은 얇은 잔자갈층을 경계로 구분이 된다. 5지층은 토양쐐기를 포함하고 있는 적갈색 찰흙층이며 6지층은 황갈색 모래질찰흙층으로 구석기시대 1문화층의 유물이 발견되었다. 7지층은 회백색 모래질뻘층으로 비문화층이다. 8지층은 황갈색 굵은모래층이며, 9지층은 황갈색 자갈층으로 모두 비문화층이다.

죽내리 유적은 4개의 구석기시대 문화층이 약 5m에 이르는 퇴적 속에 비문화층을 사이에 두고 정연한 층위를 이루고 있다. 그리고 각 문화층의 분포범위도 뚜렷하게 구분이 되어있을 뿐 아니라 일정한 기울기를 이루며 상당히 안정되게 퇴적된 모습을 보여준다.

1문화층 석기의 주된 돌감은 석영맥암과 응회암 자갈이며, 2문화층에서도 이 종류는 변함이 없다. 유물수가 대단히 적은 3문화층에서는 석영맥암 자갈이 이용되었다. 4문화층에서는 석영맥암, 응회암 이외에 새로 유문암이 등장하는데, 점유비율은 10% 남짓된다. 죽내리에 살았던 구석기인들이 애용한 석재는 석영맥암과 응회암, 그리고 유문암이다. 석재의 크기는 1문화층의 경우 소형·중형·대형·초대형이었고, 2·3문화층의 석영맥암은 소형·중형이었으며 4문화층의 유문암은 소형이 많고 중형은 적었으며, 응회암은 소형·중형·대형·초대형이 쓰였고, 석영맥암은 소형·중형·대형이 쓰였다. 주위에서는 이러한 석재를 흔하게 볼 수 있다.

몸돌의 종류로는 특정한 모양을 띄지 않는 단순몸돌과 일정한 형태의 둥근몸돌, 주판알모양몸돌, 모루망치떼기몸돌이 있다. 그리고 비록 돌날몸돌과 세형몸돌은 발굴되지 않았지만, 틀림없이 제작된 것으로 미뤼진다. 격지를 얻는 방법을 살펴보면, 타격혹이나 타격점의 특징으로 보아 돌망치 직접떼기가 주로 쓰인 것으로 생각되나 석재별로 격지의 굽상태와 격지각의 크기가 매우 뚜렷하게 구분되어 석재에 따라 직접떼기의 방법도 차이가 있었다고 생각된다.

제1문화층에서는 총 596점이 출토되었으며 그 중 응회암제 양면찍개, 주먹도끼, 주먹자르개,긁개, 홈날, 톱니날 등이 있고 석영맥암으로 제작된 찍개, 여러면석기, 주먹끼르개, 긁개, 홈날톱니날, 뚜루개, 새기개, 잔손질된 석기 등이 있다. 응회암 및 석영맥암제 몸돌, 안팍날찍개, 주먹찌르개 중에 격지와 접합하는 예가 있다. 제2문화층에서는 총 340점의 석제유물이 확인되었으며 그 중 격지, 긁개, 홈날 및 자갈돌석기 등 소량의 석기가 수습되었다. 제3문화층에서는 총 95점의 석기 중 격지, 홈날, 자갈돌석기 등이 확인되었다. 제4문화층에는 3,126점이 출토되었는데 그 중 유문암, 응회암, 석영맥암, 사암, 혈암(shale) 등의 석재를 이용하여 몸돌, 격지, 돌날, 세형돌날, 찍개, 여러면석기, 긁개, 홈날, 등손잡이칼, 톱니날, 새기개, 끝날긁개, 부리날, 뚜루개, 자갈돌석기, 망치, 모룻돌 등의 석기들을 제작하였다. 유문암 석기 중 몸돌과 격지 혹은 격지끼리, 석영맥암 석기 중에도 몸돌과 격지들이 혹은 격지끼리 붙는 예가 있다. 2·3문화층에서도 1·4문화층보다는 적지만 붙는 예들이 있다.

죽내리 구석기인들이 불을 사용한 사실은 불 먹은 돌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조사 구역 내에서 비록 화덕자리[爐址]나 숯을 찾아내지 못했지만, 불 먹어서 터진 돌들이 석기제작이 집중된 부근의 사방 약 5m 범위에서 세 무리나 드러나 그들의 일상에 불이 쓰여졌음을 알 수가 있다.

이처럼 죽내리 유적 4개의 구석기시대 문화층은 모두 몸돌, 격지, 조각돌과 부스러기, 잔손질석기와 자갈돌석기 그리고 접합석기들을 포함하고 있어, 오랫동안 석기제작터로 이용되었음을 보여준다.

죽내리 유적의 구석기층은 방사성탄소연대 측정용 시료를 찾지 못해 절대연대측정을 할 수 없었지만, 지층과 퇴적층 두께, 제4기 퇴적층 분석, 화산재 분석, 다른 유적들과의 석기 종류와 제작기법 비교 및 방사성탄소연대 참조 등을 통해 시기나 연대추정이 어느 정도 가능하다. 즉 1문화층은 마지막 간빙기 이후 적어도 6만 5천년 전보다 이른 시기로 생각되며, 전남지방에서 최근까지 조사된 유적의 문화층들 중 가장 오래된 중기구석기시대에 속한다고 하겠다. 2문화층의 연대는 잠정으로 약 3만∼6만년 전, 3문화층은 2만∼2만 3천년 전 전후로 추정된다. 4문화층은 유문암제 돌날과 세형돌날이 출토되는 것으로 보아, 후기구석기 늦은 시기인 약 1만 4천년 전 무렵으로 가늠된다. 함께 나온 석영맥암과 응회암 석기들은 그 시대의 석기군을 잘 보여줄 뿐만 아니라 앞 시기의 석기 제작기법이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적절한 예라고 하겠다.

청동기시대 주거지 2기가 확인되었으며 유물로는 무문토기호(無文土器壺), 공렬토기(孔列土器)편, 이중구연단사선문(二重口緣短斜線文)토기, 돌끌[石鑿], 숫돌 등이 출토되었다. 그리고 유구선은 분명하지 않으나 퇴적층에서 반달돌칼[半月形石刀], 돌자귀[手斧], 화살촉, 숫돌[砥石], 토기저부편 등이 출토되었다.

삼국시대 유구로는 조사구역의 북동쪽에서 돌덧널무덤[石槨墓] 7기가 조사되었으며 유물로는 병, 단지, 접시, 굽다리단지, 뚜껑접시, 잔, 가락바퀴[紡錘車], 철탁(鐵鐸), 쇠낫[鐵鎌], 쇠도끼[鐵斧], 널고리, 널못, 쇠칼, 구슬 등이 출토되었다.

보고자는 청동기문화층을 공렬토기, 이중구연단사선문토기, 반달돌칼 등의 유물과 1호 주거지 숯의 방사성탄소연대를 근거로 청동기 전기로 편년하고 있다. 그리고 삼국시대 문화층의 돌덧널무덤은 굽다리접시, 병 등의 유물을 근거로 5∼6세기에 축조된 것으로 보고 있다.

참고문헌

『호남 구석기도감』(조선대학교박물관, 2006)
『한국고고학사전』(국립문화재연구소, 2002)
『순천 죽내리유적』(이기길·최미노·김은정, 조선대학교박물관, 2000)
『순천시 황전면 죽내리 유적 추가발굴 약보고서』(조선대학교박물관, 1996)
「호남 내륙지역의 구석기문화」(이기길, 『호남고고학보』14, 2001)
관련 미디어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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