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의 감평군(欿平郡, 또는武平郡ㆍ沙平郡)이었는데, 757년(경덕왕 16) 승평군으로 고쳐 해읍(海邑)ㆍ여산(廬山)ㆍ희양(晞陽)의 3현을 영현(領縣)으로 하였으며 무주(武州)에 예속시켰다. 940년(태조 23) 승주(昇州, 또는 昇化)로 고치고, 983년(성종 2) 12목(牧)의 하나로 승주목을 두었다.
996년 승주연해군절도사(昇州兗海軍節度使)로 두었으며, 1012년(현종 3) 안무사(安撫使)를 두었고, 1036년(정종 2) 승평군으로 복구하여 부유(富有)ㆍ돌산(突山)ㆍ여수(麗水)ㆍ광양(光陽)을 속현으로 하였다. 1309년(충선왕 1) 승주목으로 하였다가 다음해 순천부(順天府)로 바꾸었다.
이곳은 삼국시대 백제(昇州, 또는 昇化)와 신라의 접경지역으로 충돌이 잦았으며, 663년(문무왕 3) 김흠순(金欽純)이 백제의 사평성(沙平城)을 공격하여 이를 점령한 적이 있다. 927년(경애왕 4) 강주(康州)에 속하였던 돌산 등 4개 지역이 고려에 귀순해온 적도 있다.
고려 후기 왜구의 침입이 잦았으며, 조선시대에는 이곳에 좌수영을 두었다. 옛 이름 사평이나 무평은 모두 ‘큰 들’이라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