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0년에 창간되었으며, 발행인은 유형환(柳炯煥), 편집인은 천세원(千世元)이다. 판형은 B5판으로 지면은 40면 내외이다. 제7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에서 『세텬ᄉᆞ의 긔별』이라는 이름으로 1910년 10월에 창간된 회지로서, 1916년 7월호부터 제호를 『시조월보(時兆月報)』로 바꿔 간행하였다.
창간호는 미국 선교사 오벽(吾璧, Oberg,H.A.)이 발행인을 맡았으며 편집인 역시 선교사 우국화(禹國華, Urquhart,E.J.)가 맡아 실무까지 보았다. 『시조』라는 제호는 1923년 9월호부터 붙여졌었는데, 이는 통권 제156호 때의 일이다. 시조사의 이름으로 편집, 간행되었던 이 회지는 일반 논단을 비롯하여 과학란·가정란·위생란 등을 두고 논설·잡문·시총(詩叢) 등 다양한 내용을 담아 펴냈다.
그래서 당시 읽을 것이 없던 일반인들에게까지 파고 들어가 보급되었다. 이렇게 교회의 기관지이면서도 교양지적 성격을 지닌 이 잡지가 교인이 아닌 사람들에게도 널리 읽혀졌기 때문에 1944년 9월 일제에 의하여 강제 폐간되고 말았다. 8·15광복 2년 후인 1947년 10월에 복간되었으나 6·25사변으로 휴간되었다가 서울의 수복과 더불어 1951년 10월에 복간되어 계속 끊이지 않고 발간되고 있다.
처음 순수한 기독교회의 전도지로 출범한 이 회지는 기독사상의 전도와 아울러 시사·건강·가정문제까지 다루면서 시종 편집방침을 바꾸지 않는 모범적인 교회지로 계속 발행되고 있다. 종교지이기는 하나 종합교양지에 못지않은 편집을 함으로써 최장수 잡지의 자리를 굳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