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평산(平山). 본명은 신목희(申穆熙), 별명은 신명희(申明熙). 자는 덕현(德賢). 경상북도 문경 출신이다.
1895년(고종 32) 을미사변에 격분하여 이듬해인 1896년 정월 예천군에서 기의(起義)한 의병장 이강년(李康秊)의 휘하에서 참모관으로 종군하였다.
1월 11일 안동의진에 의하여 쫓겨나 도주 중인 안동관찰사 김석중(金奭中)과 이호윤(李浩允)·김인담(金仁覃) 등 3명을 체포, 참수하는 데 일익을 담당하였다.
그 달 15일 문경 마고성(麻姑城)에서 적을 맞아 일명 ‘할이전전투’를 전개하였으나, 병력의 열세로 패전하였다. 이 때 신경희의 신분이 드러나 고향의 본가가 관군에 의하여 불태워졌고, 이로 인하여 인근의 십여호가 전소되었다.
그 뒤 1907년에는 단양에서 재차 기의한 이강년의 의병부대에 참가하여 단양의 복상곡(復上谷)에서 일본군과 교전하다가 오른쪽 어깨에 적탄을 맞고 적에게 생포되었다. 압송되어 가던 중 도주하여 산간에 피신한 뒤 치료 중에 사망하였다.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