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고령(高靈). 자는 희인(希仁), 호는 이계(伊溪). 공조참판 신장(申檣)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수군절도사 신말주(申末周)이고, 아버지는 여절교위(勵節校尉) 신홍(申洪)이며, 어머니는 변균(卞鈞)의 딸이다.
1486년(성종 17) 진사가 되고 1495년(연산군 1) 증광 문과에 병과로 급제, 승문원부정자가 되고, 예문관검열·승문원주서를 거쳐 옥당(玉堂: 홍문관의 다른 이름)에 들어갔다. 1506년(중종 1) 사간원 헌납과 장령을 지냈고, 1516년 창원부사로 있을 때에는 청렴하고 근면한 수령(守令)으로서 표창을 받았다.
1517년에 홍문관부제학·호조참판·이조판서 등을 역임하였는데, 특히 이조판서로 있을 때는 과거시(科擧試)의 전형을 맡아 사사로움이 조금도 없는 공정한 관리를 하였으며, 1522년 정조사(正朝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다.
1528년 좌참찬(左參贊), 이해 겨울에 호조판서 겸 세자좌부빈객(戶曹判書兼世子左副賓客)을 거쳐, 1536년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지냈다. 신공제는 순창의 수석을 사랑하여 한 정자를 짓고 스스로 이계주인(伊溪主人)이라 하였는데, 호가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초서와 예서에 능하였고 촉체(蜀體)를 잘 썼다. 또한, 『해동명적(海東名蹟)』이라는 동국명인의 필적을 간행하였다. 글씨는 광주안참판침묘비(廣州安參判琛墓碑)와 남원윤판서효손묘비(南原尹判書孝孫墓碑)가 남아 있다. 청백리에 피선되었으며, 시호는 정민(貞敏)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