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세기 중엽 이후 신라와 당나라의 관계가 원활해지고 양국간의 인적 · 물적 교류가 활발해짐에 따라 많은 신라인들이 당나라에 건너가 거주하였다. 그 중 화이허(淮河)와 양쯔강 하류지역의 신라인들은 추저우(楚州) · 롄수이(漣水) 등의 도회지에 모여 살았고, 도시의 한 구역에 집중적으로 거주해 자치구역을 형성하였다. 이 구역을 신라방이라 하며, 이를 중심으로 인근의 신라인들을 통할하였다.
신라방에는 장(長)으로서 총관(總管)이 있었고, 그 아래에 전지관(全知官)이 실무를 담당한 듯하며, 역어(譯語)가 있어 교섭업무를 주관하였다. 한편 도시가 아닌 시골에 형성된 신라인들의 촌락들을 총괄하는 자치적 행정기관으로 구당신라소(勾當新羅所)가 있었고, 일정한 지역내의 신라인 사회를 관할하였다. 그 중 산둥성 원덩현(文登縣)의 신라소가 유명하였다. 신라소의 장인 압아(押衙)와 신라방의 총관은 대등한 위계였으며, 당나라의 지방관의 통제하에서 업무를 수행하였다.
신라방이 설치된 지역은 도회지였으므로, 그곳의 신라인들은 주로 상업 · 운송업 · 무역업 · 조선업 등의 상공업에 종사했고, 수부(水夫) · 공인(工人) 등 이와 연관된 직업 종사자들이 다수였다. 이들은 중국 동해안 연안운송업 및 상업 외에도 밍저우(明州) · 쑤저우(蘇州) · 양저우(揚州) 등 당시 국제적인 무역항에서 아라비아 · 페르시아 등의 상인과 교역하였다.
그리고 신라 본국과 일본을 왕래하면서 국제무역의 중요한 일익을 담당하였다. 또한 북으로 산둥성 등주에 이르기까지 내륙수로와 연안지역에서 위에 열거한 각종 생업에 종사하며, 각지에 있던 신라인 사회와 밀접히 연관된 생활을 영위하였다. →신라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