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정치사회사연구 ()

고대사
문헌
1974년 역사학자 이기백의 신라시대의 정치와 사회 제도에 관한 학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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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1974년 역사학자 이기백의 신라시대의 정치와 사회 제도에 관한 학술서.
개설

A5판. 총 326쪽. 1974년 일조각(一潮閣)에서 간행하였다. 5부로 나누어 13편의 논문을 수록하였다.

내용

저자는 신라의 정치·사회의 전개 과정을 ‘귀족 연합―왕의 전제(專制)―귀족 연립(聯立)’이라는 귀납적 풀이로 설명할 수 있다는 논리를 개진하였다.

갈문왕(葛文王) 및 육두품을 합한 귀족 세력과 신분제를 제1부에서 다루었고, 대등(大等)과 상대등(上大等)을 귀족 연합의 상징으로 해 제2부에서 다루었다. 또 전제 정치를 대표하는 것으로 품주(稟主)와 집사부(執事部)에 대해 제3부에서 다루었고, 제4부에서는 사회 변동과 정치 개혁으로 5악(五岳), 단속사(斷俗寺)와 원가(怨歌), 혜공왕의 정치 변혁, 사병(私兵) 등을 다루었다.

제5부는 1968년에 발견된 영천 청제비(菁堤碑)의 축제기(築堤記)와 수치기(修治記)를 통해 수리(水利)의 발달상과 촌락민의 지배 조직을 해명한 것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신라 지배 세력의 변천 과정을 당시 사람들의 활동을 통해 찾으려 함으로써 한국 고대사 연구의 새로운 방법론을 제시하였다.

의의와 평가

이러한 역사 해석의 모색은 일제 식민지 사학자들이나 민족 사학자들의 언어학적 풀이를 배격했다는 데 큰 뜻이 있다. 특히 논문의 전개상 『삼국사기』의 초기 기록을 사료적인 가치로 인정함으로써 『삼국사기』 연구에 새로운 길을 열게 하였다.

무엇보다도 이 책에서는 ‘갈문왕이 왕족·왕비족·왕모족 등 독립된 가계의 장에게 준 왕위 계승권이 없는 준왕적 존재’임을 밝힌 점, 화백(和白)의 구성원인 대등과 그 의장으로서 상대등의 변천 과정에서 신라 권력 구조를 구명한 점, 육두품의 가문과 그 활동상을 확인한 점, 집사부의 성립과 변천 과정을 통해 왕권의 신장과 쇠퇴를 서술한 점 등은 신라의 정치와 사회를 이해하는 데 관건이 되었다.

또한 5악과 전제 왕권의 관계, 사병과 왕권 쟁탈의 연계 문제를 해명하고, 수치 사업을 통해 중앙과 호족의 관련을 해명함으로써 신라 말의 사회 변동상을 심층적으로 파악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그러나 논지의 전개에 나타난 지나친 도식적 해석 방법은 역사 발전의 형태를 일정한 틀에 묶어 두려고 하지 않았느냐는 지적도 있으며, 신라의 전제 왕권이 중대 이전, 즉 중고(中古) 시기인 진흥왕이나 진평왕 대에 어느 정도 이룩되었다는 새로운 연구 성과에 비추어 반론의 여지가 있다. 그러나 이 책은 한국 고대사 연구에서 식민지 사관을 극복하고 방법론이나 성과를 한 차원 높인 역저라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서평신라정치사회사연구(書評新羅政治社會史硏究)』(신형식, 『역사교육(歷史敎育)』 16, 1974)
『서평신라정치사회사연구(書評新羅政治社會史硏究)』(이기동, 『역사학보(歷史學報)』 62, 19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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