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숙주와 정경부인 무송윤씨(茂松尹氏)와의 쌍분묘로, 경기도 의정부시 고산동(高山洞) 구성 마을 뒷편에 위치한 부용산 아래에 있다. 묘역 왼쪽 언덕에 두 기의 묘소가 있는데 위에는 손자의 묘소가 있고, 아래에는 아들 신주(申澍, 1435~1456)의 묘가 위치해 있다. 1985년 9월 20일에 경기도 기념물로 지정되었고, 고령신씨 종친회에서 관리하고 있다.
신숙주(申叔舟, 1417~1475)는 조선 전기의 문신이다. 세종이 훈민정음을 창제할 때 명나라의 언어학자인 한림학사 황찬(黃瓚)의 도움을 얻기 위해 요동을 13차례나 왕래하는 등 공적이 많았다. 세조가 왕위를 찬탈한 뒤에는 외교와 국방에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여 예조판서와 병조판서를 수년간 겸임하였다.
묘소는 쌍분이여, 묘역의 규모는 1633㎡이다. 중앙에 묘비가 있고 각 봉분 앞에 상석(床石)과 향로석(香爐石), 장명등(長明燈)이 각기 하나씩 배치되어 있다. 그 앞에 좌우로 문인석이 하나씩 세워져 있으며 장대석(長臺石)으로 계절(階節 : 무덤 앞에 평평하게 만들어 놓은 땅)을 쌓고 밑에 다시 무인석을 배치하였다.
묘비는 후대에 세워진 것으로, 뒷면에 ‘숭정기원후 이백칠십년(崇禎紀元後二百七十年)’이라는 명문(銘文)으로 보아 1897년(고종 34)에 세워진 것으로 보인다.
묘소 아래쪽으로 20여 미터 지점에 대리석으로 된 신도비가 세워져 있는데 규모는 총 높이 240㎝, 너비 60㎝, 두께 56㎝이다. 1477년(성종 8)에 세워진 것으로, 아들인 이조 참판 고천군(高川君) 신정(申瀞)이 건립하였고, 비문은 이승소(李承召)가 지었으며, 글씨는 정난종(鄭蘭宗)이 썼다.
또한 묘역의 하단 좌측에는 1971년 새로 중건된 신도비가 있으며, 그 오른쪽에는 1971년 한글학회에서 한글 창제에 크게 공헌한 것을 기리기 위해 세운 한글 창제 사적비가 있다. 이는 한글학회 이사장 허웅이 짓고 문교부 장학관이자 18대손인 신집호가 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