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국보로 지정되었다. 1644년(인조 22)에 응열(應悅), 학전(學全), 일측(一測), 석능(釋能) 등 5명의 화원 비구(畵員比丘)가 그렸다. 이 괘불탱에는 ‘갑진(甲辰)’이라는 간지(干支)가 적혀 있는데, 응열이 제작한 갑사(甲寺) 삼신불괘불탱(1650년 작)과 수덕사(修德寺) 노사나불괘불탱(1673년 작)으로 미루어 ‘갑진’은 1664년으로 추정된다. 화원인 응열, 학전, 석능은 같은 밑그림을 사용하여 9년 후 수덕사 노사나불괘불탱도 제작했기 때문에 이들은 유사하다. 그리고 ‘원만보신노사나불(圓滿報身盧舍那佛)’이라는 주존명(主尊銘)과 ‘대영산회탱(大靈山會幀)’의 명칭이 적혀있다.
설법인의 노사나불입상은 지권인(智拳印: 왼손 집게손가락을 뻗쳐 세우고 오른손으로 그 첫째 마디를 쥔 손 모양)의 비로자나불 화불을 포함하여 9구의 화불(化佛)이 장식된 보관(寶冠)을 쓰고 있다. 그리고 이 입상을 중심으로 10대보살, 10대제자(十大弟子), 범천(梵天)과 제석천(帝釋天), 사천왕, 화불, 비천상이 배치되었다. 권속은 노사나불에 비해 조그맣게 묘사되어 등장 권속의 수가 많음에도 이후 유행하는 독존형 괘불탱처럼 보인다.
원통형에 가까운 신체의 노사나불은 갸름한 얼굴에 반달형 눈썹, 긴 눈, 인중이 짧고 입이 작은 근엄한 표정이다. 거신광(擧身光: 부처나 보살의 온몸에서 나오는 빛)은 모란 덩굴무늬와 8구의 화불(化佛)로 장식적이다.
여의(如意)를 든 문수보살과 경책(經冊)을 얹은 연꽃을 든 보현보살, 붉은 해를 든 일광보살(日光菩薩)과 흰 달을 든 월광보살(月光菩薩), 정병(淨甁)을 든 관음보살과 보주(寶珠)와 석장(錫杖: 중이 짚고 다니는 지팡이)을 지닌 지장보살 및 샌들(sandal)을 신거나 석장을 짚고 부채를 든 십대제자, 범천과 제석천, 사천왕 등의 자세, 복장, 영락(瓔珞: 구슬을 꿰어 만든 장신구) 장식에서 생동감이 엿보인다. 특히 관음보살과 지장보살은 붉은 두광으로 표현되어있다. 이는 응열 등이 조성한 갑사 삼신불괘불탱(1650년)의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 수덕사 노사나불괘불탱(1673년)의 관음보살과 지장보살에서도 같은 수법이 등장한 것으로 흔하지않다.
불·보살의 신체에 금채 대신 황색을 사용했으며 밝고 선명한 적색과 녹색 위주로 흰색, 청색, 분홍 등을 사용하여 현란한 느낌을 준다. 오색 광선을 배경으로 많은 무리를 거느리고 현신하는 듯한 노사나불의 손은 강조되었으며, 옷 문양과 영락 장식에 금채(金彩)하여 화려하다.
이 노사나불괘불탱은 1650~1673년 사이 충청남도 지방에서 주로 비로자나삼신불괘불탱을 제작한 응열을 중심으로 활약한 작가군의 계보와 그 화풍을 알려주는 기준작이라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