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아주(鵝州). 초명은 응개(應漑). 자는 길래(吉來), 호는 용애(龍崖). 충청북도 청주 출생. 신심(申鐔)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광주반씨(光州潘氏)로 반봉익(潘鳳翼)의 딸이다. 송시열(宋時烈)의 문인이다.
5세 때에 아버지를 여의었는데 홀로된 어머니를 극진히 봉양하였다. 일찍이 향시에 여러 번 합격하였으나 과거에는 끝내 오르지 못하고, 그 뒤 뜻을 달리하여 학문연구에 전심, 역학과 성리학에 깊이 들어갔으며 천문·역수에도 밝았다.
1689년(숙종 15) 송시열이 사사되자 이에 항변하는 내용의 상소문을 써서 대궐 앞에 나아가 시위하는 등, 스승의 신원을 위하여 힘썼으며, 명의 신종을 제사지내자는 유림의 운동에 앞장섰다. 만년에는 후진 양성에 힘써 문하에 많은 학자가 배출되었다. 저서로 『용애문집(龍崖文集)』 4권 1책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