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6판. 96면. 작자의 제3시집으로, 1964년 모음사(母音社)에서 간행하였다. 총 28편의 시를 3부로 나누어 싣고 있다. 제1부에는 「새」·「종달새」·「밝은정오」·「열쇠」·「손」 등 13편, 제2부에는 「접시에 놓인 자연(自然)」·「해토(解土)」·「땡볕의 그늘」·「나무」 등 10편, 제3부에는 「종소리」·「조어(釣魚)」 등 5편이 수록되어 있다.
제2시집 『갈매기 소묘(素描)』에서 자기 시세계의 확립을 위하여 기법상의 모색과 탐구를 시도하던 작자가 다시 시역(詩域)의 내면적인 확장을 시도하여 존재와 언어의 문제를 가지고 씨름하던 시기의 작품을 모은 것이다. 특히, 연작시 「새」는 이와 같은 경향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지금까지 그가 그려오던 ‘은유(隱喩)의 새’가 아닌 ‘실재(實在)의 새’를 잡기 위하여 언어라는 총기로 무장한 포수에 자신을 비유하였다.
그러나 포수가 잡은 것은 항상 ‘새’가 아니라 그 형해(形骸)뿐이라는 것이 그의 결론이다. 그리하여 ‘무엇인가 소중한 것’은 버리면서 신의 쓰레기나 줍는 것이 시인이라는 자기비하도 서슴지 않고 있다. 이와 같은 그의 존재론이 서구 철학이론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고 있으면서도, 그의 시가 관념적이거나 사변적인 인상을 주지 않는 것은 이미지를 창출해내는 그의 능숙한 솜씨 때문일 것이다.
시는 사상의 정서적 등가물(等價物)이 되어야 한다는 주지시(主知詩)의 강령을 바탕으로 하면서 의성어나 의태어를 시각적으로 배치하는 형태상의 실험도 재치 있게 행함으로써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또한, 「열쇠」·「손」 같은 작품들은 그가 하나의 사물을 얼마나 깊이 있고 다각적으로 탐구하고 있으며, 그것을 얼마나 간결하고 기지 있게 표현하는가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그런가 하면 「창(窓)」·「조어」 등의 작품에서는 그가 인생이나 현실의 문제에도 결코 무관심하지 않음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 시집은 제4시집 『새의 암장(暗葬)』과 더불어 박남수의 시세계를 대표하는 시집이며, 중년기에 접어든 작자의 안정감과 원숙함이 잘 조화된 시세계를 접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