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권. 인본. 이규보(李奎報)의 『동국이상국집』에 실려 있는 이 책의 서문에 의하면, 종래부터 고려 궁중에서 전해오던 다방(茶房)에서 수집한 약방 중에 신효한 방문들이 있었으나 오랜 세월에 거의 탈락, 폐실되어감을 저자가 애석히 여겨 고종의 재가를 얻어 2권으로 나누고 다시 긴요한 많은 방문들을 첨부하여 ‘신집어의촬요방’이라 이름하고 평양유수에 보내 1226년에 간인(刊印), 반포하였다.
이 책은 이미 산일되었으나 조선 세종 때 편성한 『향약집성방(鄕藥集成方)』 중에 12방문이 채록되어 있어 이 책의 편모를 조금이라도 살필 수 있게 한다. 그런데 이 방문에 응용된 주치병증(主治病症)과 주요약재들은 중국 한의방의 지식 전통을 거의 그대로 받아왔다.
그러나 당나라의 고전의방서인 『외대비요(外臺秘要)』나 송나라의 칙찬(勅撰)인 『성제총록(聖濟總錄)』과 비교하여보면 그 약재들의 실용방법에 있어서는 일치되지 않는 것을 적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이것은 이 방서가 당·송의 의학지식을 기초로 하여 자기나라의 풍습에 적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경험술법을 발전시키는 데 노력해온 증거로 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