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 백제의 사평현(沙平縣)이었는데, 757년(경덕왕 16)신평으로 고치고 혜성군(槥城郡: 지금의 唐津郡 沔川面)의 영현으로 삼았다. 1018년(현종 9)홍주(洪州)에 예속되었고, 그 뒤 1895년(고종 32)면천군(沔川郡)에 편입되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개편 때 면천군이 없어지면서 인접면의 일부를 병합하여 신평면으로 개칭하고 당진군에 편입시켰다.
위치상으로 보아 조선시대에는 주읍(主邑)인 홍주목(洪州牧)과는 덕산(德山)을 사이에 둔 월경처(越境處)였다. 지명유래는 천지개벽을 하여 한진포(漢津浦)가 터질 때 산으로 형성되었던 지역이 넓은 평야 또는 갯벌로 변한 데서 새롭게 생긴 들이라는 뜻으로 신평이라 하였다 한다. 고려 말에 수차례에 걸쳐 왜구의 침입을 받았으며, 조선시대에는 세곡을 운반하는 아산만의 교통상의 요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