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국 백자청화 묘지는 조선 중기의 문신 신화국의 행적을 기록한 묘지(墓誌)이다. 원래 그의 묘소는 금천(衿川) 동면(東面) 삼성산(三聖山)에 있었는데, 현 위치로 이장하는 과정에서 이 묘지석이 발견되었다. 충청북도 진천군 이월면 노원리 노은영당 앞 재실에 보관되어 있다. 1982년 12월 17일에 충청북도 민속문화재(현, 민속문화유산)로 지정되었고, 평산신씨 종중에서 관리하고 있다.
신화국의 무덤에서 출토된 유물은 백자합과 청화백자로 된 묘지석이다. 묘지란 죽은 사람의 행적 등을 적어 무덤 안에 묻은 도판에 새긴 글이다. 직사각형의 묘지석은 백자에 청화 안료로 글씨를 쓴 청자판(靑磁板) 3매로 이루어져 있으며, 백자합(盒)에 보관하도록 되어있다. 묘지석의 내용은 신화국의 선조 및 그의 행적을 적고 있다.
묘지의 내용에 따르면, 신화국(申華國, 15171578)의 본관은 평산(平山)이고, 자는 덕부(德夫)이다. 신개(申槩)의 현손으로, 1546년(명종 1)에 생원시에 합격하였다. 명장 신잡(申磼, 15411609)과 신립(申砬, 1546~1592)은 모두 그의 아들이다.
아들 신잡이 임진왜란 때에 선조(宣祖)를 호종한 공로로, 호성공신(扈聖功臣)이 되면서 신화국은 평천부원군(平川府院君)으로 추증되었다. 인조의 생모인 계운궁(啓運宮) 구씨의 어머니가 신화국의 딸이다. 또한 인조반정 공신인 신경진(申景禛)은 신립의 아들이다.이와 같이 신화국의 집안은 조선 중기 이후 무공(武功)이 특출했던 가문이었다.
1568년(선조 1)에 신잡이 처조부(妻祖父)의 장례에 들렀다가 후진 양성을 위해 충청북도 진천군 노원리에 낙향한 이후부터 이곳에 세거(世居)하였다. 한편 구기(舊基)에는 1615년(광해군 7)에 처음 세운 신잡의 영당인 노은영당(老隱影堂)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