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8년(고종 5) 4월 남연군(南延君: 흥선대원군의 父)묘가 도굴된 사건이 발생하였을 때 영종진(永宗鎭)의 첨사로 있으면서, 충청남도 덕산(德山) 주민들에게 쫓겨서 영종진 앞바다에 이른 독일인 오페르트(Oppert,E.J.) 일행에게 문정관(問情官)을 파견하여 그들의 소행을 추궁하였다.
그러나 무례한 요구를 하며, 영종진내에 상륙하여 총검을 갖춘 채 난동을 부리자, 그들에 대항하여 무사와 교리(校吏) 몇 백명을 거느리고 교전하였다. 이 충돌과정에서 전사한 상대측 2명의 목을 베어 동문(東門)에 내걸었으며, 마침내 오페르트 일행을 쫓아내어 팔미도(八尾島) 밖으로 퇴거시켰다.
1869년 인천부사(仁川府使), 1870년 경상우도 병마절도사(慶尙右道兵馬節度使)를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