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경기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신흠과 부인 전의이씨(全義李氏)와의 합장묘로 경기도 광주군 퇴촌면 영동리에 위치한다.
신흠(申欽, 1566~1628)은 송인수(宋麟壽)와 이제민(李濟民)의 문하에서 수학했으며, 문장에 뛰어나서 이정구(李廷龜), 장유(張維), 이식(李植)과 함께 조선 중기 한문학의 정종(正宗)으로 일컬어졌다. 장남 신익성(申翊聖)이 선조의 딸인 정숙옹주(貞淑翁主)의 부마로 간택되었고, 선조로부터 영창대군(永昌大君)의 보필을 부탁받은 유교칠신(遺敎七臣) 가운데 한명이었다.
봉분은 단분(單墳)이며, 묘역은 사성(莎城)으로 둘러져 있다. 봉분 앞에는 묘비·상석(床石)·향로석(香爐石)이 가까이 모여 있다. 상석 전방에는 장명등(長明燈)이 있으며, 상석과 장명등을 중심으로 좌우에 망주석(望柱石)과 문인석이 배치되어 있다. 묘비는 1628년(인조 6)에 건립된 것으로 뒷면에 새겨져 있는 비문은 그가 손수 작성한 것이다.
묘역 입구에 세워진 신도비는 7대손 신응식(申應植)이 1699년(숙종 25)에 건립한 것으로 이수(螭首)·비신(碑身)·대석(臺石)으로 구성되어 있다. 높이 335㎝의 대형이면서도 전체적으로 안정감 있는 비례 감각을 보이고 있고 세부적으로 생동감 있는 조각 표현 등이 매우 뛰어난 작품이다. 비문은 이정구(李廷龜)가 짓고 심열(沈悅)이 글을 썼으며 전액(篆額)은 김상용(金尙容)이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