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이 28∼99㎝, 입지름 96∼99.5㎝. 동국대학교박물관 소장. 1967년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산내면 입석리 실상사에서 발견되었는데, 발견 당시 이미 상반부를 잃어서 파종(破鐘)으로 남아 있었다.
현재 남아 있는 부분은 유곽(乳廓) · 비천상(飛天像) · 당좌(撞座) 등이지만 우수한 수법을 볼 수 있다. 하대(下帶)는 아래위에 가는 연주문대(連珠文帶)를 둘러 장식하고 그 안에는 당초문대(唐草文帶)를 정교하게 조각하였는데, 당초문 속에는 비천상과 당좌 바로 아래에 원형문(圓形文)이 있어 성덕대왕신종(聖德大王神鐘)의 양식과 비슷하다.
종신(鐘身)에는 서로 마주보고 있는 2구의 주악비천(奏樂飛天)과 당좌가 배치되어 있다. 당좌는 중앙에서부터 연꽃 · 인동화문(忍冬花文) · 연주(連珠)의 순으로 무늬가 장식되어 있다. 또, 주악상은 구름 위에서 천의(天衣)와 영락(瓔珞)을 위로 날리고 있는 형식이 성덕대왕신종과 상원사동종(上院寺銅鐘)을 연상하게 한다.
생황(笙簧)과 피리를 불고 있는 비천의 풍만한 모습은 신라불상의 양식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이 종은 남아 있는 부분의 입지름으로 보아 상원사동종보다 약간 큰 규모였으리라 추정되는데, 실상사의 창건때인 828년(헌덕왕 3) 함께 주조되었다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