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저술은 조목의 『월천집(月川集)』 권4에 수록되어 있고, 이황의 대답은 『퇴계집(退溪集)』 권23 「답조사경(答趙士敬)」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심경』에 관한 조목과 이황 사이의 문답은 1565년(명종 20) 6월 이후에서 이듬해 5월 사이에 몇 차례 계속되었던 것으로 나타난다. 이 때 양쪽에서 사용했던 『심경』은 정민정(程敏政)이 주석한 『심경부주(心經附註)』이다.
『심경품질』에 수록된 조목의 질문과 의견, 그에 대한 이황의 대답은 각 장의 다양한 문제를 11단으로 나누어 놓고 있다. 조목은 예리하게 의문을 지적하고, 이황은 정연한 논리로 정밀하게 대답을 전개하였다. 특히 『심경』에 실려 있는 두 개의 도상인 정복심(程復心)의 「심학도(心學圖)」와 왕백(王柏)의 「인심도심도(人心道心圖)」에 관한 정밀한 분석이 이루어지고 있다.
먼저 조목이 『심경』의 첫머리에 실려 있는 「심학도」에 대해 작자를 묻자, 이황은 처음에 단정하지 못하였다. 이후에 정복심의 「사서장도(四書章圖)」를 발견하고 작자를 정복심으로 확인해준다. 이 「심학도」의 개념 배치를 종횡으로 검토해 양쪽으로 대응시키고 상하로 연결시키며 서로 구분하는 관계 구조에 대해 일일이 의문을 제기하자, 이황은 자신이 처음에 가졌던 의문점을 제시하면서도 지나친 분석이 의도를 해칠 수 있음을 경계하며 정복심의 견해를 지지해 변론하였다.
다음으로 조목이 인심·도심 문제에 관해 인심과 사욕을 일치시키는 데 의문을 제기하자, 이황은 인심이 사욕이 아니라는 해석은 주희(朱憙)가 만년에 내린 정론임을 확인하며 왕백의 「인심도심도」와 도설(圖說)에 내포된 문제점을 지적한 것에 대해 인정하였다. 이에 따라 조목은 왕백의 「인심도심도」를 수정해 「인심도심정일집중도(人心道心 精一執中圖)」를 그렸고, 이황은 조목의 도상을 다시 두 차례나 수정해 「인심도심도」의 완정본을 제시하고 있다.
이 저술에 수록된 『심경』에 관한 조목과 이황의 토론은 퇴계 문하에서 일어난 중요한 토론의 하나이다. 당시 『심경』을 신명(神明)처럼 존숭하는 이황의 학풍이 그 문하에 전파되고 심화되어가는 과정을 엿볼 수 있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