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경기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심온의 묘역에는 무덤 이외에 홍살문을 비롯하여 외삼문, 내삼문, 재실, 신도비와 비각, 사당인 안효사(安孝祠) 등이 조성되어 있다.
심온(沈溫, 1375~1418)은 조선 초기의 문신으로 청성백(靑城伯) 심덕부(沈德符)의 아들이며 소헌왕후(昭憲王后)의 아버지이자 세종의 장인이다. 1418년(태종 18) 영의정으로 사은사(謝恩使)가 되어 명나라에 갔다가 귀국 도중 의주에서 체포되어 수원으로 압송되어 사사되었다. 그가 왕비의 아버지로서 세력이 커짐을 염려한 좌의정 박은(朴訔)이 무고한 것으로 밝혀지면서 세종은 사후에 그의 관작을 복구해 주었다.
묘역 규모는 750㎡이며, 봉분의 규모는 높이 170㎝, 직경 650㎝이다. 묘역은 장대석(長臺石)으로 계절(階節 : 무덤 앞에 평평하게 만들어 놓은 땅)을 쌓아 2단으로 조성하였다. 봉분 앞 제1단에는 묘비와 상석(床石)이 있다. 묘비는 백색의 대리석으로 만들었는데 안평대군(安平大君) 이용(李瑢)의 글씨다.
묘비는 총 높이 101㎝, 너비 46.5㎝, 두께 7.5㎝이고 전면에는 ‘유명조선국대광보국숭록대부 영의정부사영서운관사 청천부원군증시안효심공지묘(有明朝鮮國大匡輔國崇祿大夫領議政府事領書雲觀事 靑川府院君贈諡安孝沈公之墓)’라는 명문이 있다. 제2단에는 장명등(長明燈)과 좌우에 문인석 한 쌍이 있다.
묘소에서 조금 떨어진 마을 입구에는 1737년(영조 13)에 세운 신도비(神道碑)가 있다. 비문은 9세손인 심단(沈檀)이 글을 짓고 서명균(徐命均)이 글씨를 썼으며 전액(篆額)은 정제두의 문인인 심육(沈錥)이 썼다.
세종의 장인 묘소라는 특수성이 있으며, 묘비의 글씨가 외손자인 안평대군의 글씨라는 점에서 서예사적으로 가치가 있다. 조선 후기 영조대에 후손들이 신도비를 조성하였다는 점도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