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나라 성화 연간에 소주 화계촌에 사는 서경(徐敬)은 한홍사의 화주승(化主僧)에게 시주(施主)하고, 그 공덕(功德)에 의하여 아들 서천흥(徐天興)을 얻는다.
이때 서경은 조정에 간신(奸臣)이 득세(得勢)함을 보고, 벼슬에서 물러나 고향으로 돌아와 한가롭게 지낸다. 그즈음 황제는 남만(南蠻)이 중원(中原)을 침공(侵攻)할 것이라는 변방(邊方)의 소식을 듣는다. 그래서 황제는 서경을 불러 남방순무어사로 삼아, 서경에게 백성들을 위로하고 백성들의 사정을 살피게 한다. 어사(御史) 서경이 남만으로 들어가니, 만왕은 도리어 서경의 항복을 받으려 한다.
이에 서경이 만왕을 크게 꾸짖자, 만왕은 서경을 감옥에 가두고 중원을 침공하기 위해 대군(大軍)을 일으킨다. 만왕의 아들인 왕자 소영은 서경의 충절(忠節)에 감복(感服)하여, 만왕이 모르게 좋은 음식으로 서경을 후하게 대접한다. 만왕은 항복하지 않는 서경을 청사도라는 성에 가둔다. 한편, 서경의 부인 이씨는 아들 서천흥을 키우면서 외로이 지내다가, 산적에게 납치된다.
그러나 이씨는 산적으로부터 탈출하여, 꿈속에서 여승(女僧)이 교시(敎示)한 대로 남경(南京)에 있는 백화암을 찾아가 그곳에서 숨어 지낸다. 서경의 아들 서천흥은 산적들에 의하여 길에 버려졌으나, 패주에 사는 왕 어사의 노비였던 장삼에게 발견되어 그의 집에서 길러진다.
한편, 왕 어사는 죽고 부인 유씨가 남매를 데리고 사는데, 아들 왕희령은 혼례를 올렸지만 딸 왕혜란은 혼례를 올리지 못한 상태였다. 왕혜란은 결혼하지 않은 상태로 있으면서, 자기 어머니 유씨가 태몽(胎夢)에서 선녀로부터 받은 구슬의 짝을 가진 낭군(郞君)을 기다린다. 하루는 부인 유씨가 장삼의 사랑방에서 독서하고 있는 공자(公子) 서천흥을 본다. 서천흥의 재주와 용모가 마음이 끌린 유씨는 장삼을 통하여 서천흥의 신분을 알아본 뒤, 서천흥을 자기 집으로 불러 자기 아들 왕희령과 같이 있게 한다. 이때, 서천흥은 장삼에게 구슬 주머니를 하나 지어 달라고 하면서, 자기가 가지고 있는 구슬의 내력(來歷)을 이야기해 준다.
장삼이 그 구슬을 유씨에게 보여 주자, 유씨는 그 구슬을 자신의 딸 왕혜란이 가지고 있는 구슬과 서로 맞추어 본다. 그러자 유씨는 딸의 천생연분을 찾았다고 기뻐하면서, 아들 왕희령을 시켜 구슬을 가지고 외당(外堂)에 나가 서천흥에게 청혼하도록 한다. 이에 서천흥과 왕혜란은 약혼하고, 서천흥이 출세하길 기다려 혼례를 치르기로 한다.
조정(朝廷)에서 과거시험을 시행하자, 서천흥은 문과(文科)와 무과(武科)에 모두 장원 급제(壯元及第)하고, 왕희령은 문과에 급제한다. 이때 황제의 숙부(叔父)인 제왕(齊王)이 상처(喪妻)하고 새로운 후비(后妃)를 구하다가, 왕 어사의 딸이 어질고 정숙하며 아름답다는 말을 듣고 황제를 움직여 왕 어사의 딸과 혼인을 치를 수 있도록 한다.
한림편수(翰林編修)가 된 왕희령은 황제 앞에 나아가, 자신의 동생이 한림학사(翰林學士) 서천흥과 약혼했다고 말하고, 쌍주(雙珠)의 내력을 아뢴다. 황제는 그 인연을 기특히 여겨 서천흥을 불러 물어보고, 제왕과 왕혜란이 혼인하게 한다는 전지(前志)를 도로 거두어들인다. 그리고 서천흥과 왕혜란이 혼례를 치를 수 있도록 한다.
이때 남만이 중원을 침공하니 서천흥이 자원하여 대원수(大元帥)가 되어서 만군을 격파한 후, 만국의 태자(太子)를 만왕으로 삼고 아버지 서경과 함께 돌아온다. 이후 서응천은 일생 동안 부귀와 공명을 누리며 살다가, 꿈속에서 예전에 선녀로부터 받았던 구슬을 하늘에 바치고 부인과 함께 일시에 죽는다.
이 작품은 이른바 ‘기봉(奇逢)류 소설’로, 신물(神物)을 통한 남녀의 결연을 중심 내용으로 하면서, 남주인공의 영웅성을 부각하기 위한 군담(軍談)이 첨가되어 있다. 특히, 이 작품에서는 신물이 하늘로부터 내려와 지상에서의 인연(因緣)을 이루어 줄 수 있게 함으로써, 인연의 절대성(絕對性)이 더욱 강조된다는 특징을 갖는다.
그래서 이 인연을 깨려고 하는 지상의 어떤 시도도 초월적 힘의 도움으로 쉽게 극복이 되고 만다. 이러한 모습은 비슷한 유형의 기봉류 소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남자 주인공의 아버지인 서경이 남만왕을 타이르러 갔다가 도리어 만왕에게 투옥(投獄)된 이후, 남자 주인공이자 서경의 아들인 서천흥이 대원수가 되어 만국을 평정(平定)하고 감옥에 갇힌 아버지를 구출한다는 구성은 새롭다.
한편, 이본(異本)의 현황으로 볼 때, 「쌍주기연」은 1850년에 간행된 경판본 33장을 필두로 하여, 주로 상업성(商業性)을 목적으로 한 경판본으로 향유된 것으로 보인다. 활자본 또한 경판본으로 확보된 대중성(大衆性)에 기반하여 출간된 것으로 보인다.
경판본은 서천흥과 왕혜란의 애정 서사를 근간(根幹)으로 하면서도, 양반 남성인 서천흥의 영웅적인 활약상이 부각되는 체제(體制)에 긍정적이면서 보수적(保守的)인 성향을 보인다. 작품에 나타난 귀족적 영웅소설과 애정소설적 요소들은 경판본의 대중성 확보가 주된 원인인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더불어 경판본이 획득한 대중성은 필사본인 「쌍열옥소록」과 「쌍열옥소삼봉」을 저본(底本)으로 한 활자본 「삼생기연」(1923)이 출현하는 데에 직접적인 계기로 작용했다는 점에서도 소설사적 의의를 부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