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은 ‘아비(阿非)’이며 ‘지(知)’는 이름 뒤에 붙은 미칭으로 신라의 이름표기법에 의한 것이다. 중국 당나라에 유학한 뒤 643년(선덕여왕 12) 귀국한 자장(慈藏)의 건의에 따라 신라 선덕여왕은 황룡사(皇龍寺)에 목조9층탑을 건립하기로 하였다. 이 때 신라에서는 백제에 건탑(建塔) 기술자를 요청하였는데 아비지가 발탁되었다.
「황룡사구층목탑찰주본기(皇龍寺九層木塔刹柱本記)」에 의하면 이찬(伊飡) 용춘(龍春)이 주관한 이 탑의 건립은 645년에 시작되었으며, 그가 소장(小匠) 200여 명을 거느리고 작업하여 탑을 완공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황룡사구층목탑의 건립목적이 신라의 호국신앙에서 비롯된 사실과 건탑기술자가 적국인 백제인임은 서로 묘한 대응을 이루고 있다. 그 때문에 다음과 같은 설화가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전한다.
처음 찰주를 세우던 날 아비지는 꿈에 백제가 망하는 형상을 보고 의심하여 일손을 놓았다. 그러자 홀연히 땅이 진동하고 어둡더니 한 노승과 장사가 금당문에서 나와 그 기둥을 세우고는 어디론가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이에 아비지는 후회하면서 그 탑을 완성하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