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대와 작자는 미상이다. 채색필사본으로 지도첩의 크기는 세로 47㎝, 가로 30.5㎝이다. 수록된 부·군·현 각 지도의 크기는 세로 95㎝, 가로 73㎝ 내외로 일정하지 않다. 지도첩의 크기에 맞게 접어서 제책되었다.
『안동도회(安東都會)』는 행정 및 군사적인 목적을 위해서 작성된 지도로서 지도의 상단 여백에는 성곽의 길이 및 민호·전답·군보·창·봉수·이정(里程) 등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하천의 유로, 산줄기, 수록된 지명 등이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소장된 『해동지도(海東地圖)』의 경상도 각 군현 지도와 거의 동일하게 그려져 있어 지도 제작에서 그 연관성을 찾아볼 수 있다.
『해동지도』는 지명과 사방 경계까지의 거리 정보가 각 군현지도에 기록되어 있고, 도로가 자세하게 표시되어 있다. 그리고 『해동지도』의 주기 부분은 후대에 새로 기입하기 위해 지도의 여백 부분에 새로운 종이를 덧붙인 부분이 많다. 반면에 『안동도회』는 지도에 지명과 사방 경계까지의 거리 정보가 기록되어 있지 않고, 도로도 생략되어 있다. 또 지도 여백에는 주기를 다시 기록하기 위해 종이를 덧붙인 경우가 전혀 없어 『안동도회』는 『해동지도』나 그 원본 계통의 지도를 바탕으로 하여 제작된 것으로 판단된다.
이는 『안동도회』와 동일한 형식으로 되어 있는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소장 『경주도회』의 「대구부지도」에서도 확인된다. 『해동지도』의 「대구부지도」에 그려져 있지 않던 읍성이 『경주도회』의 「대구부지도」에는 그려져 있다. 대구 읍성은 1736년(영조 12)에 축조되기 때문에 『해동지도』는 그 이전의 상황을, 『경주도회』의 「대구부지도」는 그 이후의 상황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읍성 부분만 놓고 볼 때 『경주도회』의 「대구부지도」는 『해동지도』의 「대구부지도」를 바탕으로 제작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각 군현지도에 수록된 지명에서 『안동도회』의 것은 거의 대부분 『해동지도』에 나오는 반면에 『해동지도』에서 보이는 지명이 『안동도회』에는 보이지 않는 것이 많아 『안동도회』가 『해동지도』나 그 원본 계통의 지도를 필사하면서 지명을 생략했다고 볼 수 있다. 주기에 기록된 내용 중에는 거리나 성곽의 둘레 등 시기적 변화에 따라 달라지지 않는 것은 『해동지도』의 주기와 거의 동일하지만 호구 등 조세와 관련된 통계는 『해동지도』와 내용이 다르다. 이는 변하지 않는 정보는 그대로 두면서도 조세와 관련된 통계처럼 시기적 변화가 나타나는 정보는 지도 제작 당시의 상황을 반영하려 했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