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는 국평(國平), 호는 질재(質齋)이다.
1321년(충숙왕 8)에 좌대언(左代言)이 되었다. 왕이 심양왕(瀋陽王) 왕고(王暠)의 일로 원나라에 불리어 가 4년동안 억류되어 있었을 때 함께 있으면서 왕을 위한 경비를 국내에서 염출하여 조달하였는데 심양왕 왕고가 이를 미워하여 원나라 조정에 고하고 종정부(宗正府)에 가두었다.
왕을 따라 귀국한 뒤에 첨의참리(僉議參理)가 되었고, 1327년(충숙왕 14)에는 왕이 원나라에 있었을 때 충절을 바친 공으로 1등공신이 되었으며 순흥부원군(順興府院君)의 호를 받았다.
1330년(충혜왕 즉위년) 지공거(知貢擧)가 되어 송천봉(宋天鳳)·홍언박(洪彦博)·이달존(李達尊)·이문정(李文挺)·최재(崔宰)·정운경(鄭云敬) 등 33인과 명경(明經)·은사(恩賜) 각 2인을 급제시켰고 옥대(玉帶)를 하사받았다. 1338년 찬성사(贊成事)로서 죽었다. 시호는 문의(文懿)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