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安詳)이라고도 한다. 그는 692년(효소왕 1) 화랑에 임명된 부례랑(夫禮郎)의 낭도가 되어 가까이서 그를 따랐다. 이듬해 3월 무리와 더불어 금란(金蘭 : 지금의 강원도 통천)을 거쳐 북명(北溟 : 지금의 원산만 부근) 방면에 이르렀을 때, 부례랑이 동예(東濊) 사람들에게 붙잡히자 홀로 그를 찾아나섰다가 행방불명되었다.
얼마 뒤 부례랑과 함께 만파식적(萬波息笛)을 가지고 서울로 돌아와 국왕으로부터 대통(大統)에 임명되었다 한다. 일설에는 그가 준영랑(俊永郎)의 낭도였다고도 하며, 혹은 화랑으로서 술랑(述郎)·영랑(永郎)·남랑(南郎)과 함께 이른바 사선(四仙)의 하나였다고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