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허중(虛中), 호는 죽옥(竹屋). 아버지는 첨의중찬(僉議中贊)을 지낸 안향(安珦)이다.
충렬왕(忠烈王) 때 문과에 급제하여 1301년(충렬왕 27)에 국학좨주(國學祭酒)로 최응(崔凝)과 함께 과거를 주관하였다. 1304년 우부승지(右副承旨), 이듬해 밀직부사(密直副使) 등을 역임하였다. 1314년(충숙왕 1) 지밀직(知密直)으로 박사(博士) 유연(柳衍) 등이 새로 구입한 경적(經籍) 1만 800권을 검열하였다. 1316년 밀직부사 겸 대사헌(密直副使兼大司憲)에서 파직되고, 후임으로 조후(趙珝)가 임명되었다.
사람들의 우러름을 받기는 했으나 안으로 도와주는 사람이 없어서 지식인들은 이를 애석하게 여겼다. 일찍이 합포(合浦: 지금의 경상남도 창원시 합포지역)에 출진(出鎭)하였을 때 청렴과 재간으로 칭찬이 있었다. 1329년 검교찬성사(檢校贊成事)로 죽었다.
순흥의 용연사(龍淵祠)에 봉향(奉享)되었으며, 시호는 문순(文順)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