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 신라의 마리현(馬利縣)이었는데, 경덕왕이 이안(利安)이라 개칭하여 천령군(天嶺郡: 지금의 咸陽郡)의 영현으로 삼았다. 1018년(현종 9) 합주(陜州)의 임내였다가 1390년(공양왕 2) 감음현(感陰縣)에 이속시켰다.
감음현은 본래 신라의 남내현(南內縣)이었는데, 경덕왕이 여선(餘善)으로 고쳐 거창군(居昌郡)의 영현으로 하였다. 고려 초기감음으로 고치고 1018년 합주의 속현으로 하였는데, 1161년(의종 15) 현사람 자화(子和) 등의 무고사건이 일어나 자화는 강 속에 던져 죽이고 현은 강등시켜 부곡(部曲)이 되었다. 1390년 복구되어 감음에 감무를 두고 이안현을 예속시켰다.
1415년(태종 15) 비로소 안음현으로 고치고 치소를 이안으로 옮겼다. 그 뒤 약 300년이 지난 1728년(영조 4) 읍사람의 반란사건이 일어나 이 현을 거창ㆍ함양의 두 현에 나누어 예속시켰는데, 1736년 다시 복구하여 현으로 하였다.
1767년 이웃 산음현(山陰縣)에서 일곱 살 난 아이가 아기를 낳았다고 하여 산청현(山淸縣)으로 고쳤음에 즈음하여 안음현도 ‘음(陰)’자를 고쳐 안의현(安義縣)으로 바꾸게 되었다. 1895년(고종 32) 진주부(晋州府) 관할의 안의군이 되었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함양군 안의면이 되었다.
조선시대에 안음현은 소백산맥의 덕유산에서 남쪽으로 뻗은 여러 갈래의 산줄기에 둘러싸인 산간분지에 자리잡고 있었다. 당시 안음의 북쪽으로는 옥산창(玉山倉)을 지나 육십치(六十峙, 또는 六十嶺)를 넘어 무주와 연결되었다. 남쪽으로는 남강의 지류를 따라 함양에 이르고, 동쪽은 거창과 합천, 서쪽은 전라북도 장수와 연결되었다. 이 지역은 소백산맥 동쪽 사면을 차지하여 삼국시대에는 신라의 국경 지대로 많은 산성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