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창후 ()

고전시가
인물
조선 후기에, 『한설당유고』, 「한설당」, 「명분설」 등을 저술한 문인.
이칭
계중(繼仲)
한설당(閒說堂)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687년(숙종 13)
사망 연도
1771년(영조 47)
출생지
보성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후기에, 『한설당유고』, 「한설당」, 「명분설」 등을 저술한 문인.
개설

자는 계중(繼仲), 호는 한설당(閒說堂). 전라남도 보성출신. 아버지는 안세헌(安世獻)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효우학행으로 유림의 포상천거를 받았으나 벼슬에는 뜻이 없어 평생을 한설당에서 글벗들과 시문에 힘썼다.

1747년(영조 23)에 유교적 도덕을 기반으로 한 자신의 생활윤리를 연작시조로서 시조 24수와 가사 1편과 함께 같은 제목의 한시문을 지었다. 그가 국문으로 시조와 가사를 짓게 된 동기는 증조부인 안욱(安彧)이 김인후(金麟厚)와 임억령(林億齡) 등과 사귀던 집안이었던 데에 있다.

이른바 호남가단의 중심지였던 담양, 장성의 인물들이 많은 국문시가를 지음으로써 보성의 한설당 집안에까지 그 영향을 끼쳤던 것이다.

이러한 지연과 인맥을 따라 「한설당(閒說堂)」 25가(시조 24수와 가사 1편)도 나올 수 있었으며, 17세기에 보성에서 가사 「남초가(南草歌)」를 지은 박사형(朴士亨)의 영향도 직접적으로 입었을 것임을 알 수 있다.

그가 남긴 시조 24수에는 저마다 소제목을 붙였는데, 가사의 소제목은 「명분설(名分說)」이다. 저서로는 문집 『한설당유고(閒說堂遺稿)』가 있다.

참고문헌

『한설당유고(閒說堂遺稿)』
『조선시대 시가의 연구』(이상보, 이회문화사, 1993)
「한설당 안창후의 시가 연구」(이상보, 『어문학논총』9, 국민대학교, 1990)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