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죽산(竹山). 안면(安勉)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안노생(安魯生)이고, 아버지는 회양부사 안복초(安復初)이다. 어머니는 양주부사(襄州府使) 윤장(尹將)의 딸이며, 부인은 좌정언(左正言) 최유종(崔有悰)의 딸이다.
생원시에 합격한 후 1441년(세종 23) 식년문과에 정과로 급제하고, 1455년(세조 1)에 소윤(少尹)으로 삼등공신에 녹봉되었다.
그러나 1455년 충청도경력(忠淸道經歷)으로 재직 당시, 단종복위운동 때 사육신 중의 한 명이었던 충청도관찰사 박팽년(朴彭年)과 같이 근무한 것 때문에 의심을 받아 처벌되어야 한다고 탄핵을 받았다[『세조실록(世祖實錄)』에는 안철손이 박팽년의 幕客으로 의심받았다고 기록되어 있음]. 1460년 충청전라도조전경차관(忠淸全羅道漕轉敬差官)이 되어 조선(漕船) 만드는 일을 매우 훌륭하게 하여 교기(交綺: 두 종류의 실을 섞어서 짠 비단)·마장목(馬裝木: 말을 꾸미는 데 쓰이는 비용의 무명) 등을 하사받을 정도로 세조로부터 우대를 받았다.
그 뒤 호조참의로 충청도도체찰부사(忠淸道都體察副使)가 되고 호조참판 행첨지중추원사(行僉知中樞院事)를 거쳐, 충청도관찰사를 지낼 때 도민(道民) 중 불만자들의 무고를 받기도 하였다. 세조의 국휼(國恤: 국가의 상(喪)) 중에 관기 광한아(廣寒兒)와 동침한 것이 불충이므로 처벌되어야 한다고 탄핵을 받았으나, 성종의 비호로 내금위장(內禁衛將)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