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7년 4월에 정환상(鄭煥庠) 외 여섯 명의 선각자가 교육을 통한 구국의 정신 아래 사립 일신학교(私立日新學校)로 설립하였다. 초대 교장에 정환상이 취임하였으며 설립 당시 입학생은 한 명에 불과하였다.
같은 해 8월 뜻하지 않은 폭도들의 습격으로 건물 및 기물들이 파괴, 전소되었으나 설립자들은 이에 좌절하지 않고 더욱 굳게 뭉쳐 1908년 3월에 지금의 하동군 양보면 감당리로 교사를 옮겨 개교하였다.
1910년 8월에 정식 인가를 받고 수업연한 4년에 입학생 30명, 교사 2명으로 편성하였으며, 당시 교과목은 수신·국어·일본어·한문·산술·이과·체조 등이 주된 교과였고 1915년에 창가와 농업이 증가되었다. 1912년 3월 제1회 졸업생 9명을 배출하고 1920년 4월 공립으로 개편되어 양보공립보통학교로 교명을 개칭하였다.
1921년 4월에 현재의 위치로 교사를 신축 이전하였으며 1925년 4월 수업연한을 6년으로 연장하였다. 1938년에 양보공립소학교로 개칭하고 1940년 4월에는 박달(朴達) 분교장을 설립하였으며 1941년에 양보공립국민학교로 개칭하였다. 1945년 9월에 10학급 520명으로 재개교하여 광복 후 초대 교장에 박중경(朴重景)이 취임하였다.
그 뒤 양보국민학교로 개칭하였으며 1947년 9월에는 박달 분교장을 독립교로 분리시키고 우복(愚伏) 분교장을 설립하였다가 1952년 5월에 이를 다시 독립교로 분리시켰다. 그 뒤 1965년 3월에 운암(雲岩) 분교장을 설립하였다가 1969년에 독립교로 분리시키는 등 3개 분교장을 승격, 분리하였다.
당시 학생수는 12학급 620여 명이었으나 급진적인 산업화로 이농현상이 심하게 나타나 1984년부터 6학급으로 감소하였다. 1996년 3월에 양보초등학교로 교명을 변경하였다.
2008년 3월 현재 6학급에 재학생 41명, 교원 14명이며, 졸업생은 88회에 총 4,681명을 배출하였다.
‘바른 인성과 실력을 갖춘 창의적인 어린이’라는 교육목표 아래 덕·지·체를 겸비한 양보인을 육성하기 위해 효제교육, 기본생활 습관, 독서생활과 건강 줄넘기 교육을 운영하고 있다. ‘연중돌봄학교’를 운영하여 학력향상을 위한 공부방과 다양한 특기 적성, 충·효·예를 다하는 체험활동을 실시하고 있다.
특색교육 활동으로는 ‘양보샤인하모니’를 조직하여 1인 1악기 연주와 연주 급수 인증제를 운영하고 있다. 최근에는 디지털교과서 현장적용 연구학교를 운영하여 소규모학교에서 디지털교과서를 활용한 사회과 자기주도적 학습력 신장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