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 고구려의 사복홀(沙伏忽)이었는데, 신라 경덕왕 때 적성(赤城)이라 고치고 백성군(白城郡)의 영현으로 하였다. 고려 초양성(陽城)으로 고쳤고, 현종 때 수주(水州)에 예속되었으며, 명종 때 양성현이 되어 감무를 두었다.
1413년(태종 13) 현감을 두고 충청도에서 경기도로 이속되었다. 1895년(고종 32) 공주부에 속하는 양성군(陽城郡)이 되었고, 다음해에 경기도의 양성군이 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안성군에 편입되어 양성면이 되었다.
지명의 유래는 사복홀의 사복이 차음(借音)으로 ‘새밝이’어서 새밝골 또는 새밝성이 되어 이것이 양곡(陽谷) 또는 양성이 된 것이다. 적성의 적(赤)도 ‘밝’과 관계가 있다.
조선시대에는 치소(治所)가 진산인 천덕산(天德山)과 남쪽의 백운산(白雲山) 사이에 자리잡고 있어 외부와는 선원천(禪院川)을 건너 안성과 연결되었다. 서해안에 월경처인 괴태길곶(槐台吉串)이 있어 양성의 세곡(稅穀)은 이곳을 통하여 경창(京倉)으로 운송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