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 고구려의 제차파의현(齊次巴衣縣)이었는데, 신라 경덕왕 때 공암(孔巖)으로 고쳐 율진군(栗津郡: 지금의 과천)의 영현(領縣)으로 삼았다.
1018년(현종 9) 수주(樹州: 지금의 부평)에 속하였고, 1310년(충선왕 2) 양천현이 되어 현령을 두었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도 그대로 따랐으며, 1895년(고종 32) 양천군이 되어 인천부의 관할이 되었다가 다음해에 경기도에 속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김포군에 편입되어 양동면과 양서면이 되었다. 1963년 2개 면이 서울특별시로 편입되었고, 1977년 강서구가 신설되고, 1988년 강서구에서 양천구가 분리, 신설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으며, 가양동 지역으로 추정된다.
조선시대에는 진산인 성산(城山)에 산성이 있었고, 양화진ㆍ공암진을 통하여 서울ㆍ행주 지역과 연결되었다. 개화산(開花山)에는 봉수가 있어 김포의 북성산(北城山)과 연결되어 서울의 목멱산(지금의 남산)에 보고하였다.
교통상으로는 노량진을 통하여 서울과 연결되었고, 김포ㆍ부평 지역과의 사이에 도로가 발달하였다. 남산역(南山驛)은 인천ㆍ시흥 지역의 주민들이 이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