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호당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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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당시 조정에서의 정책 결정 및 전황 등을 기록한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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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임진왜란 당시 조정에서의 정책 결정 및 전황 등을 기록한 일기.
서지사항

28권 8책. 필사본. 필사 연대는 알 수 없으나 본문의 내용 중 저자의 성만을 기록하고 이름은 휘명(諱名)해 기록하지 않은 점으로 볼 때 그의 후손에 의해 필사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서문과 발문도 없다.

편차를 보면 권1은 「성주기(星州記)」로 1592년 7월 25일부터 그 해 12월 13일까지, 권2는 「근왕록(勤王錄)」으로 1593년 2월 21일부터 8월 25일까지, 권3은 「헌부간원기(憲府諫院記)」로 같은 해 9월 4일부터 그 이듬해 3월 23일까지, 권4는 「춘추록(春秋錄)」으로 1594년 3월 22일부터 4월 13일까지, 권5 · 6은 「은대기(銀臺記)」로 같은 해 4월 14일부터 6월 8일까지, 권7은 「남행일록(南行日錄)」으로 같은 해 6월 10일부터 7일 17일까지, 이하 권8∼28은 모두 「은대기」로 같은 해 7월 18일부터 1597년 4월 15일까지의 일기가 각각 수록되어 있다.

내용

권1의 「성주기」는 태반이 유실되어 마지막 달 것만 수록했다는 부주(附註)가 있다. 이것으로 볼 때 저자는 임진왜란이 일어난 초기 또는 그 이전부터 일기를 썼던 것으로 생각된다. 일기의 내용은 먼저 년월일을 표시한 후 그 날의 날씨를 적고 있다.

이어 ‘ㅇ’표를 한 다음에 그 날 있었던 일을 기록하였다. 「성주기」는 임진년 7월 25일 의병장 원사립(元士立)의 활동을 기록하는 것으로 시작, 그 다음 날인 26일에는 전라도에서 온 전통(傳通)의 내용을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그 내용을 대략 소개하면, 7월 8일 전라도 좌우도주사(左右道舟師 : 舟師는 水軍을 말함.)가 경상우수사의 병력과 합세해 고성에서 적선 59척을 격파하고 적군 300여 급(級)을 목잘랐으며 물에 빠져 죽은 자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는 등 상세한 전과를 기록하고 있다.

권2의 「근왕록」은 1593년 2월 21일 남원을 출발, 임실 · 전주 · 여산 · 부여 · 광주(廣州) · 김포를 지나 3월 2일에는 강화도광성진(廣城津)에 도착해 배를 타는 등의 여정과 겪은 일들을 자세히 기록하였다.

권3 이하 「헌부간원기」와 「은대기」등은 그가 장령 또는 동부승지 · 좌부승지 · 좌승지 등의 관직에 있는 동안 겪은 일과 임금의 동정을 비롯해 조정에서의 정책 결정 및 전황 등을 기록하고 있다. 특히, 「은대기」는 승정원 동료 직원의 출근 · 결근 상황까지 기록하고 있으며, 각종 계장(啓狀)의 내용도 소개하였다.

이 책은 임진왜란 당시 조정의 요직에 있던 사람이 쓴 난중 일기로서 여러 가지 풍부한 내용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임진왜란 당시의 역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가치가 있다. 현재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에 있는데, 그 목록에 승정원에서 편(編)한 것으로 소개된 것은 잘못된 기록이다.

집필자
이민식(한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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