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남원(南原). 자는 구이(懼而), 호는 구졸암(九拙菴). 양천지(梁川至)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동지중추부사 양관(梁灌)이고, 아버지는 첨정(僉正) 양응곤(梁應鵾)이다. 어머니는 검열(檢閱) 강문회(姜文會)의 딸이다. 노정(盧禎)·이후백(李後白)과 함께 도의와 학문을 닦아, 영남의 삼걸(三傑)이라 일컬어졌다.
1540년(중종 35) 식년시에서 진사에 급제하였고, 1546년(명종 1)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정언(正言)·지평 등을 지내고, 1568년(선조 1)에 예빈시정(禮賓寺正)으로 춘추관편수관을 겸직하여 『명종실록』의 편찬에 참여하였다.
벼슬은 파주목사·사간·의주목사·승지를 거쳐, 1580년(선조 13)에는 장례원(掌隷院)의 판결사(判決事)를 지냈다. 같은 해 동지사(冬至使)로 명나라에 갔다가 옥하(玉河)의 객관에서 병사하였다. 뒤에 이조판서에 추증되고, 함양의 구천사(龜川祠)에 제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