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로는 ‘魚鳧施(어부시)’로 표기한다. 『열양세시기(冽陽歲時記)』의 상원조에 “깨끗한 종이에 흰밥을 싸서 물에 던지는 것을 어부슴이라 한다.”라는 매우 간단한 단편적인 기록이 보인다.
1930년대에는 ‘용궁맞이’라 하여 정월 14일 저녁에 한강변의 용궁당 및 강가에는 많은 부녀자들이 모여들었다. 강 위에는 무수한 작은 배들이 뜨고, 각각 사내아이들을 동반한 할머니들이 배를 타고 용신에게 바치는 공물을 강속에 던지며 소지(燒紙)를 올리기도 하였다. 또, 용궁당은 가족동반의 기원자들로 가득 차고 무녀들은 소지축원에 여념이 없었다.
기원자들은 누구나 자손의 장수를 빌기 위하여 명다리나 명실들을 바치고, 자손을 용신의 신자(神子)로 삼아 당내에는 그 명다리와 명실들이 듬뿍 쌓여 있었다. 현재는 그 용신당은 보이지 않으나 아직도 한강대교 남쪽 언덕의 큰 나무에는 많은 명실이 걸리고 촛불이 밝혀진다. 또, 많은 부녀자들이 강가에 모여서 각기 촛불을 밝히고 기원을 올린다.
배가 많이 뜨고 소지축원을 올리는 모습들은 옛날과 다름이 없지만, 지금은 동반한 어린 사내아이들은 보이지 않고, 대신 정장한 젊은 여성들의 모습이 옛날과 다르다. 강 언덕 위에는 붕어나 자라를 파는 부인들이 많은데, 이렇듯 물고기를 사서 놓아주기 때문에 이것을 방생(放生)이라 부르기도 한다. 특히, 정월 14일 밤의 한강교 남쪽 일대는 이 무수한 촛불들이 강물에 영롱하게 어려서 장관을 이룬다.
물론, 이것은 이곳만이 아니고 강가 곳곳에 점점이 전개되는 풍경들이다. 대보름 달빛 아래, 강 위에 촛불을 켜고 기원하는 이러한 일련의 신앙현상들은 전통적인 모성애의 깊은 염원의 대표적인 상징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