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때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창건되었다. 창건연대는 미상이며, 처음에는 반월산(半月山) 아래에 세웠다가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였고, 그 뒤 화장산 아래로 옮겼다가 또다시 현위치로 이건하였다.
1696년(숙종 22)에 도유사 김정하(金精河)가 대성전을 중수하였으며, 1700년에 명륜당과 동재(東齋) · 서재(西齋)를 중건하였다. 1859년에 중수하고 1870년에 재임(齋任) 곽중린(郭仲麟)과 유생의 노력으로 중수하였다. 1985년에 대성전과 내삼문(內三門)을 보수하였고, 1986년에 명륜당과 동재 등을 중수하였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6칸의 대성전, 8칸의 명륜당, 4칸의 동재, 5칸의 서재, 내삼문, 외삼문 등이 있다. 대성전에는 5성(五聖), 10철(十哲), 송조6현(宋朝六賢), 우리 나라 18현(十八賢)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건축형태는 교육공간인 명륜당을 앞쪽에, 제사공간인 대성전을 뒤쪽에 둔 전학후묘(前學後廟)의 형태이다. 대성전은 정면과 측면이 모두 3칸인 겹처마 익공 양식의 맞배지붕집이며, 명륜당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홑처마 익공 양식의 팔작지붕집이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 · 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 1명이 정원 30명의 교생을 가르쳤으나, 조선 후기 이래 향교는 교육 기능이 쇠퇴하고 대신 선현에 대한 제향을 통한 교화 기능을 주로 담당하였다. 봄 · 가을에 석전을 봉행하며 초하루 · 보름에 분향하고 있다.
이 향교는 1997년 울산광역시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고, 운영은 전교(典校) 1명과 장의(掌議) 수명이 담당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