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영월(寧越). 영월의 호장으로, 단종이 세조에 의하여 상왕(上王)에서 노산군(魯山君)으로 강봉되어 영월에 안치되었다가 시해되자, 후환을 두려워하지 않고 시신을 수습하였다. 단종이 승하한 이튿날 옥가(獄街)를 오가며 통곡하고, 관을 마련하여 아전과 백성들을 모아 영월의 북쪽 5리쯤 되는 동을지(冬乙旨)에 장사지냈다.
1585년(선조 18)에 종손인 정병(正兵) 엄한례(嚴漢禮)에게 호역(戶役)을 면제하고 노산군의 묘역을 수호(守護)하게 하였고, 현종 때 송시열(宋時烈)의 주청으로 자손을 등용하게 하였다. 숙종 때 공조참의에 증직(贈職)되었고, 영조 때 정문(旌門)을 내렸다. 뒤에 공조판서에 증직되었고, 사육신과 함께 영월의 창절사(彰節祠)에 배향되었다. 시호는 충의(忠毅)이다.